<메모리>
치매에 걸려 현재를 잊어가는 남자, 그리고 상처가 된 트라우마 때문에 과거를 잊고싶은 여자. 두 남녀가 생의 후반기에 들어 서로를 만나 서로를 품어간다. 그러나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보기엔 사랑과 관련해 전형적인 묘사가 거의 없다. 키스와 섹스 묘사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지극히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런데도 <메모리>가 사각대며 그려내는 사랑의 풍경은 너무나 낭만적이라 보는 이를 감싸 안는다. 상대를 머리끝까지 이해해주고 품어주는 것. 얼마나 힘든 상황이든 언제나 상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 <메모리>의 사랑은 당신이 제아무리 상흔이 깊은 사람일지라도 속는 셈치고 사랑에 한 번 더 속아볼까 싶게끔 만든다. 완연하고 완전한 사랑 같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제시카 차스테인은 강단있게 연기하고 있고, 피터 사스가드 또한 뱀처럼 부드럽게 감는 연기로 영화를 은은하게 뎁힌다. 단조로우면서도 효과적인 촬영과 편집은 극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잘 끌어간다. 여기에 어찌보면 평범한 드라마임에도 한꺼풀의 미스테리를 숨겨두어 자꾸만 호기심이 일게 만드는 각본과 연출의 힘 또한 끈끈하다. 주인공에게 부여된 비밀을 재빨리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길고 뭉근하게 끓여냄으로써 비장르 드라마임에도 끈질긴 긴장감을 유지해냈다. 그 덕분에 <메모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비밀스런 존재이고 또 처연한 존재인지를 상기시켜낸다. 이토록 아프고 그토록 애처로운 존재, 인간. 인간으로 살고 또 사랑하는 건 그래서 쉽지않나 보다.
인물에게 작은 미스테리를 부여해주고 그로인해 끝까지 긴장감을 창출해내는 방식. 그게 너무나 미셸 프랑코스러웠다. 그래, 사실 미셸 프랑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개봉관 수도 적은 이 작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그렇게나 발품을 팔았던 이유는 다 미셸 프랑코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의 영화인 <썬다운> 때문이었다. 개봉당시 관람했던 <썬다운>은 나에게 영화적 마법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우쳐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좀체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의 삶과 그 태도. 그러나 영화가 끝난 이후, 집까지 걸어가던 도보 20분 동안 곱씹어보며 <썬다운>은 내게 정반대의 감상을 남겨냈다. 그 경험 자체가 그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 마법 같았다. 그래서 나는 <메모리>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모리>의 그 방식은, 지극히 <썬다운>스러웠다.
<썬다운>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처럼, <메모리> 역시 영화가 모두 끝난 이후에도 자꾸만 내 마음 속에 잔류했다. <메모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내 마음은 그처럼 끈끈했다. 자꾸만 고개를 돌려 영화를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마법. 어쩌면 나는 미셸 프랑코와 사랑에 빠졌나보다. 그의 영화들에 시나브로 물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