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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14. 2022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핏빛 활력

<택시 드라이버>

베트남에서 돌아와 뉴욕의 야간 택시 기사로 일을 하게 된 20대의 젊은이. 그런데 이 젊은이가 욕망과 쾌락에 찌들어 병들어가는 도시 뉴욕을 구원하기 위해 자경단으로 나선다. 그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하는 동시에, 어린 나이에 창녀가 된 소녀를 구하려 총을 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마냥 투철한 사명감의 자경단 영웅으로만 치부하기는 좀 뭐한 게,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에게 거절 당하고나서는 그녀의 직장까지 찾아가 추태를 부렸다는 거. 고로 마냥 정의로운 인물이라고 하기에도, 또 마냥 추악한 인물이라고 하기에도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지점에 우리들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서 있다. 그와중 팩트는 어쨌거나 폭력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 정도. 


197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 요즘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주인공 트래비스는 택시를 운전하며 병든 이 도시의 환부를 더욱 더 적나라하게 목도 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층층이 쌓여, 후반부 클라이막스 장면이 완공되겠지. 하지만 1976년의 마틴 스콜세지와 폴 슈레이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래비스가 택시 기사로 일을 하며 목격한 것들은 '특정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현상'에 더 가까워보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이미 썩어가고 있는 상태이고, 그를 대표하는 특정 사건이 트래비스에게 마구 찾아오지는 않는다. 뭐, 사창가의 어린 소녀가 그의 택시로 뛰어든 것 정도가 가장 큰 '특정 사건'이겠지. 하지만 그외엔 감독 본인이 직접 출연해 주인공의 폭력적 성향을 간접적으로 유발시킨 것 정도까지 함께 빼면 뭐가 없지 않은가. 이 사회가 직접적으로 트래비스를 괴롭힌 적은 없단 말이다. 오히려 트래비스가 벳시를 괴롭히면 괴롭혔지. 


트래비스의 내면에 분노와 폭력성을 심어둔 이유는 영화 바깥에 존재한다. 베트남 전쟁. 트래비스는 당시의 베트남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미국 젊은이들의 표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베트남에서의 트래비스를 짧게나마 묘사하는 것 역시 아니다. 202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그게 응당 들어갔어야 했겠지.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1976년 당시는 실제로 베트남 전의 영향이 사회 전반에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던 시대였다. 당시의 영화로써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렇게 트래비스는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이 되어, 전쟁을 실질적으로 일으키고 주도 했던 어른 세대와의 갈등을 표현하고, 요즘 말로 하면 인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문화 아닌 문화를 일찍이 간략하게나마 묘사했으며, 자신만의 정의관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해내기도 했다. 


폭력적이고 핏빛이라, 오히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당시의 영화. 많은 사람들이 <택시 드라이버>를 당시 뉴 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의 대표작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상기의 이유들로 주저없이 <택시 드라이버>를 꼽을 것. 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로버트 드 니로는 정말로 젊더라. 하비 케이틀 또한 젊고 조디 포스터는 젊다 못해 어리더라. 게다가 직접 출연까지 해 본인 얼굴 연식까지 제대로 해준 스콜세지 옹 역시도 청춘. 그렇게 당시의 젊은이들은 영화라는 예술로 시대적 과오를 비판해냈던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 / 마틴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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