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부터 시작된 여름, 나는 이제야
00. prologue
아뿔싸. 여름이 반이나 지났다.
계속되는 장마 소식에 여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면 그제야 깨닫는다. 비 온 뒤 맑은 하늘과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발악하는 매미의 맴맴 소리. 매미의 울음소리가 마치 늦잠 자다 들은 자명종 소리인 양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이 7월 중순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진다.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듯 떠올리는 말.
'어떡해. 여름이 온 걸 잊고 있었잖아!'
나도 여름을 사랑하는 여름 예찬론자들 중 하나다. 그런데 늘 한 템포 늦는 사람. 여름이 왔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더위의 절정을 향해 계절이 달리고 있을 때다.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건지, 매 해 여름 이런다. 작년 9월 내가 일기장에 써놓은 글귀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름 벌써 끝난 거야..?'
이렇게 아쉬움에 여름의 끝자락을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면서 올해도 늦었다. 지금이 벌써 7월 말이니까. 그렇게나 5월 말, 6월부터 각종 SNS와 콘텐츠에서 '여름 대비 운동' '여름에 입을 수영복 추천' '여름 보양식' 등 여름이 시작됐다고 말해 줄 때는 무덤덤하다가 꼭 매미가 시끄럽게 울면 정신을 차린다.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여름은 한 달 반 정도 남았지만 이 여름을 잘게 쪼개서라도 내 기억에 꾹꾹 눌러 담으리라.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하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서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서 이 계절을 남겨야겠다.
조금 진정하고 일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기로 한다. 여름의 시작을 6월로 정의하고 사진첩과 캘린더를 뒤적였다. 정말 다행이고 대견하게도, 6월을 허송세월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잘 놀고 잘 먹고 즐긴 초여름 한 달이었구나.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어서 그렇지 나름대로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찾아오는 안도감. 원래 여행도 그렇지 않은가. 3박 4일 일정의 여행을 할 땐 처음 이틀은 좋기만 하다가 남은 이틀이 시작되면 '벌써 집에 가기 싫다'는 아쉬움이 늘 찾아온다. 여름도 마찬가지다. 6월은 그저 그렇다가, 더위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실감하는 짓궂은 계절.
여름이었다.
아니, 여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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