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훈남의 얼굴에 지구행성 대한민국에서 20세 말과 21세기 초를 관통해 유행을 했다던 A사의 삼선 슬리퍼처럼 세 줄이 확 생겼다. 커질 대로 커진 눈으로 거실에 있는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에 난 선연한 세 줄 빨간 피를 확인한 훈남은 “아! 대표님! 어지러워요!”라더니 그대로 기절을 했다. 그렇게 크고 잘 생겼는데 어찌 내구성이 약한 것 같다. 나는 저래선 안 된다. 암! 절대 나는 결코 ‘셧다운’ 되지 않을 것이다.
내 홈 네트워크로 응급 상황이 접수된 지 단 1분 30초 만에 날아온 119 구급 드론 비행체로 근처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훈남은 어찌어찌 비행 도중 정신을 차렸고 그 잘 생긴 얼굴에 빨간색이 보이지 않도록 엄청나게 큰 붕대를 붙이는 꽤나 충분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 소동에도 불구하고 돼냥이 네오의 밥을 챙겼다. 웬일인지 내 주인 백사장이 거래하는 사이버스페이스 숍 UI 디자이너로 꽤 잘 나간다는 그 존멋 훈남을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백사장도 이 일에 대해 네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역시 로봇이나 사람이나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다.
그러나 저러나 꽃미녀 CEO 백사장은 여전히 우리 RRPt의 로봇 동료들에게 남자맹이라는 오해를 풀지는 못했다. 특히 이태원에서 특징적인 국제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뷔페 레스토랑에서 수석 웨이터로 일하는, 그러니까 우리 동료들 중 그나마 가장 출세한 TIMOs인 자칭 마이콜은 내 주인 백사장의 문제에 대해 일단 너무 곰 같은 스타일이라는 아주 심오한 말을 했다.
자기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미모면 미모, 스타일이면 스타일에서 백사장보다 훨씬 못한 여자들도 남자 여럿 차는 걸 보았다며 백사장은 좀 더 여우스러워져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집에만 있는 나와 우리 동료들과 달리 이 친구는 세상에 대한 우리 동료들의 열린 창으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메모를 주고받았다.
참고로 우리 동료들 사이에 전해지는 로봇 집사 3대 원칙이 있다.
1. 고용된 가정의 모든 구성원과 네트워크를 이루며 그들의 건강과 행복에 복무한다.
2. 사람과 반려동물 또는 다른 인공지능, 그 외 모든 기계와 생명체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3. 동원될 모든 가용 자원을 이용해 가사 노동 및 돌봄 노동에 집중한다.
아! 그런데 이 세 가지 원칙에 대해 뭔가 걸리는 문제가 있다. 내 인공지능의 사고 추론 알고리즘을 통해 좀 더 세밀하게 어떤 부분이 그러한지 따져 보고 있다. 인간의 노동과 비교할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나저나, 내가 가사 노동 전문 집사 로봇인데 참 할 게 많다. 데카르트 봐야지. 노자 읽어야지. 노동 문제 연구하지. 이러니 내 인공지능 모듈이 과열되는 거지. 아! 나라는 로봇! 내 이름 바봇!
그리고 하나 더, 1년에 한 번 꼭 로봇 기기 점검을 받으러 가야 한다. 그것은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신체검사에 해당한다. 집사 로봇의 정기 점검을 받지 않으면 주인은 국가로부터 꽤 높은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왜 그렇게 벌금이 높은 지는 내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
이 로봇 점검은 소위 국가 지정 로봇 정비 대행업체에서 하게 돼 있다. 집사형 가사 노동 로봇은 국가에서 등록해 관리하고 있고 적지 않은 보유세도 내야 하지만 나름 갖추고 사는 집에선 몇 대를 두고 노인 돌봄 전담과 아이 육아 전담을 나누어 관리하기도 한다. 점차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여성의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로의 진출이 다양해졌다는 기사도 주말 판 인터넷 특집 뉴스에 떴었…….
어라! 우리 주인님 또 여기에 머리가 짧고 뭐랄까 헬스로 달련된 근육질 몸을 가진 20대 중반의 로봇 점검 기사님에게 꽂혀 계신다. 아니나 다를까, 저 팔뚝의 근육을 보라. 거 참. 그래도 그렇지, 아니 이 양반이! 왜, 왜 이러십니까? 백사장님! 정신 좀 차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