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초대합니다
오늘 지인 몇 사람을 집으로 초대했다. 사실 어제 낮에 먹어서는 안될 음식을 먹어서 속이 불편하고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확 떨어져서 어제 밤까지도 회복이 안되어 아무 준비를 하지 못한채 누워있어야했다. 아, 초대를 취소해야할 것인가…그런데 이미 3주 전에 이야기를 한 터라 차마 전날 밤 취소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준비되는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고 마음을 가볍게 먹고 일단 잠을 청했댜.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는 몸상태가 좀 나아져서 서둘러 집안 정리를 하고 음식을 빠르게 준비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고 손도 느려서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메뉴로만 준비했다. 오늘 식사의 컨셉은 준비하면서 즉흥적으로 연말 홈파티로 정했다. 기존에 있던 하늘색 패턴 테이블보 위에 딸이 지우개를 대고 칼로 자른 자국이 나서 이미 이 테이블보는 생명을 다했고 여기에 물감까지 여기저기 묻혀서 어차피 다른 테이블보로 교체해야 했다. 그래서 주방 수납장을 뒤적이고 있는데 마침 작년 크리스마티 때 사용했던 빨강 테이블보를 발견했다. 그래, 아직 많이 이르지만 연말 기분을 좀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분위기를 내는 김에 현관에도 작은 루돌프 등을 꺼내어 달고, 테이블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 무늬가 있는 빨간 색 식탁보를 깔았더니 제법 연말 분위기가 난다. 여기에 와인글라스까지 세팅하니 창밖으로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초대받은 이들은 현관 문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와! 크리스마스 같네 “하며 감탄했다.
집으로는 보통 초대를 안하고 밖에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다가 몇 년 전부터 종종 지인과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을 보여주고 그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사람과 정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담이 있다. 일단 청소와 정리정돈을 해야하고 내 손으로 음식도 장만해야 허고 (그것도 요즘은 각종 배달업체의 도움을 받으니 간편하게 해결이 가능하기도 하다) 모임 후엔 치우고 정리하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냥 집이 조금 어지러져 있더라도 '에라 모르겠다 나 원래 이렇게 사는데 뭐' 하는 마음으로 초대를 하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가는지를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그 사람과 백 번 만나도 채워지지 않던 친밀함을 단 한번의 만남으로 채울 수 있는 소중하고 강력한 체험이다. 또한 집에서의 만남은 무엇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처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비용에 신경쓰지 않고 다른 테이블 눈치보지 않고 정말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집에 이런저런 손님들이 참 많이 드나들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받곤 했는데 이제는 참 그런 일이 드물다. 점점 자신의 공간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집 초대의 즐거움을 몰랐었고 최근까지 내 집을 개방하기를 꺼렸었기에 그러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런 쌀쌀한 가을날 저녁,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긴장을 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게다가 연말이 아니고 올해가 아직 86일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웬지 시간 부자가 된 기분까지 든다. 올해 진짜 연말에 나는 과연 어떤 상태로,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을 것인가? D-1, 그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