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 물렸지만
오늘도 새로운 길로 돌아오진 못했다.
내가 겪어온 세월만큼
단단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익숙해진 길에
길들여졌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내려앉아
나를 가두게 된 껍질, 습관
습관이 내일의 운명이 된다면
나는 매일 새롭게 운명을 시작할 것이다.
정약용은 공부의 정점에서 육십 년 간 쌓은 성취를 모두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를 비우고 새로운 습관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산이 선택한 생의 마지막 습관, 매일,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보니 내가 도달한 공부의 끝은 이미 어릴 때 모두 배운 것이었다".
- <다산의 마지막 습관> 중 저자 '조윤제'가 쓴 글
책장 정리를 하다가 <다산의 마지막 습관>을 발견했다. 읽는 동안 줄도 긋고 메모지도 끼워가면서 꽤 열심히 읽은 흔적이 완연한데,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게으름 때문인지 뒤 삼분의 일은 깨끗하다. 들춰보니 마저 읽지 않고 중도에 독서를 그만둔 게 분명하다. 너무나 주옥같은 글로 가득해서 사실 이 책을 다 읽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다시 읽으려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요즘 일상이 바쁘다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게 된다. 이런 책은 집중과 깊은 성찰이 동반되어야 제대로 읽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아쉽지만 다시 책장에 꼽아둔다. 가을이 지나가서 겨울쯤엔 다시 읽을 수 있으려나. 우리 역사에 '다산' 같은 거목을 가졌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상에 묻혀 세상의 흐름에 막연히 쫓아가는 삶, 안온한 일상에 안주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라고, 일상에 무너지지 않고 치열하게 성찰하라고,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바로 잡으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혹독한 유배 생활에서도 기본을 지키며 절박하게 자신의 길을 찾으려했던 다산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나이 예순, 한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빈틈없이 나를 닦고 실천하고, 내 본분을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
-정약용 <자찬묘지명>에서.
10월의 첫번째 토요일,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