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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Nov 16. 2022

폭력 교사 붙여 성적 올린 아들, 더는 맞기 싫다는데…

[씨네프레소] 영화 '4등' 리뷰

*주의 :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야구계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시끄럽다.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스포츠계 폭력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을 이끌어낸다. 폭력 가해자가 불이익을 받게 하는 제도를 정비하게 하고, 스포츠계 자정 노력이 이어진다. 그러나 어느덧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또다시 폭력 문제가 제기되고, 우리는 깨닫게 된다. 전부 근본 해결책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정지우 감독의 '4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포츠계 폭력 근본 원인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정지우 감독의 '4등'(2014)은 스포츠계 폭력이 왜 끊이지 않는지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선 어린 시절 코치의 폭력에 아파했던 선수가 훗날 선생이 돼 매를 아끼지 않는 교육 방식으로 유명해지고, 부모는 그를 통해 사랑하는 자식의 성적 향상을 도모한다. 여기엔 누구의 악의도 없다. 선생도 부모도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소망뿐이지만 아이의 몸과 마음은 동시에 멍들어 간다.

준호는 수영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1등엔 큰 관심이 없다. 자신이 맞아가며 1등을 해야지만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때려서라도 자식 재능 살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


영화는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유재상)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의 엄마 정애(이항나)는 준호가 대회에서 늘 4등만 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4등은 누군가 기억해주는 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잘하면 1등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정애는 문제를 교육에서 찾는다. 실력 있는 선생이 준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재능이 빛을 발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정애는 교육열이 남다르다. 준호를 1등으로 만들고자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수소문 끝에 정애가 찾은 광수(박해준)는 스파르타 교육에 강점이 있는 선생이다. 한때 한국 수영계 유망주였던 광수의 눈에도 준호는 소질이 있어 보인다. 광수의 교육이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단지 그가 청소 도구로 준호를 때려서만은 아니다. 그는 수업 내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훈련을 한 준호는 대회에서 처음으로 2등을 하고, 그것은 정애가 '이게 맞는 방향이구나'라고 확신하게 한다.

광수는 엄하게 교육한다. 그가 매를 들고 있지 않을 때도 준호는 긴장한다. 혹시나 그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폭력 코치 광수, 스포츠계 폭력 피해자였다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승리욕이 강한 아이는 아니다. 은메달을 딴 것에 꽤나 만족했다. 그러나 광수는 그런 태도를 꾸짖는다. 광수가 생각했을 때 은메달에 흡족해하는 태도로는 절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없다. 그의 교육 방식은 점점 엄해지고, 준호는 그토록 좋아하던 수영이 싫어진다. 준호 아버지가 아들의 피멍을 발견하고, 준호는 수영을 하기 싫다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준호는 엄마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스포츠 기자인 준호의 아버지는 과거 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광수를 외면한 적이 있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사실 광수는 준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본인이 폭력 코치에게 염증을 느껴 수영선수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전도유망하던 그의 선수 커리어는 거기에서 끝났다. 그는 그 당시 조금만 견뎠다면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란 후회를 한다. 준호는 자신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재능 있는 선수의 코치로 한 번 부각되고 싶은 심정에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매를 드는 것이다.

어린 광수가 코치에게 혼나고 있다. 코치 폭력에 염증을 느꼈던 광수는 준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정애는 수영을 그만둔 준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동생인 기호의 교육에 모든 정성을 기울인다. 그건 준호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극 요법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준호는 관심을 모두 빼앗기는 것이 불안했는지 괜한 트집을 잡아 동생을 때린다. 동생을 엎드려뻗치게 하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몇 대 맞을래?"라고 물어보는 준호의 표정은 관객에게 낯설지 않다. 준호는 자신을 체벌해 가르칠 때의 광수 얼굴을 흉내낸다.

준호는 광수를 찾아가 자신을 다시 한번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1등을 해야 계속 수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멈추지 않는 몽둥이의 계영


광수는 체벌을 이유로 코치 일을 못하게 한 준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일갈한다. "지 아들 뭐 잘하는지도 모르면서 끼고 앉아가 쪽쪽 빤다고 그게 다가 아니야. 나중에 느그 아들 금메달 따면 큰절하고 싹싹 빌 준비나 하고 있어." 광수의 말마따나 이런 교육 방식을 통해 성과를 높이는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1등을 한다고 해서 폭력의 문제점이 사라지진 않는다. 성적 상승 여부와 상관없이 폭력은 인간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맞으며 배우는 동안 학생은 운동 동작뿐 아니라 비틀린 우선순위를 같이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상대방을 잘되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때리는 건 괜찮다는 사고다.

'사랑니'와 '은교'에서 영상미를 보여준 정지우 감독은 '4등'에서도 아름다운 장면을 곳곳에 삽입한다.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이 영화는 그 끔찍한 몽둥이의 계영(繼泳)을 그린다. 선수 시절 폭력이 싫어 도망쳤던 광수는 준호를 때리는 스승이 됐다. 자신을 때려가며 교육하는 광수를 두려워했던 준호는 동생을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매를 든다. "하기 싫지? 도망가고 싶고. 그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라고 말하는 광수의 눈엔 준호를 향한 애정이 있다. 상대를 잘되게 한다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실제론 그의 영혼에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다. 작품 마지막은 200m 신기록을 세운 준호의 시점 쇼트로 촬영됐다. 준호의 눈이 오래 머무는 곳은 화장실의 빗자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1등이 됐지만, 그는 더 이상 빗자루를 청소 도구로만 볼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게 된 것이다.

영화 '4등' 포스터. <사진 제공=프레인글로벌>

장르: 드라마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준, 이항나, 유재상, 최무성, 정가람 등

평점: 왓챠피디아(3.7/5.0)

※2022년 11월 16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티빙, 왓챠, U+모바일tv


OTT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씨네프레소'는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 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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