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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Oct 22. 2023

“그는 호색한, 마약도 즐겼다”...교주의 충격 사생활

영화 <마스터> 리뷰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간에겐 어딘가에서 스승을 만나길 바라는 욕구가 있다. 은둔 고수를 사사해 무림을 평정하게 되는 무협 소설이나, 인간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그린 종교 경전 등엔 그런 욕망이 반영돼 있다. 전문가가 출연해 고민 많은 의뢰인에게 솔루션을 내려주는 TV 프로그램도 그렇다. 내 문제를 꿰뚫어 보고 구원해 줄 마스터를 만나길 바라는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대리만족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레디 퀠은 전쟁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는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영화 ‘마스터’(2012) 주인공 프레디 퀠(호아킨 피닉스) 역시 구원자를 갈망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인 그는 제대 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전쟁 중 쌓인 내면의 분노를 엉뚱한 곳에 분출했으며 폭음하고 마약을 했다. 어느 날 그는 선상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종교단체를 찾아가고, 그곳의 일원이 돼 마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자기 인생을 맡긴다.  

마스터를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오른쪽)의 얼굴에는 엄한 어른과 순진한 소년이 공존한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나는 작가·의사·핵물리학자·철학자” … 너무나 완벽한 ‘마스터’


제 발로 찾아가긴 했지만 프레디는 마스터의 치유 행위를 반신반의한다. 전쟁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부터 그는 천성적으로 시니컬한 인물이다. 최면을 통해 전생과 미래를 오가며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마스터의 가르침이 잘 와닿지 않는다. “구원을 믿느냐”는 마스터의 질문에 그는 짧게 대답한다. “아니오.”

'코즈'라는 신흥종교를 이끄는 수장인 마스터는 신도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구원을 믿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찾으러 간 프레디의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 더 이상 갈 길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상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참전했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니 세상은 군인을 외면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세상에 풀어줘 버렸다. 수년간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여온 그는 세상이 아릅답다고만 믿는 순진한 얼굴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  

구원을 믿지 않는 프레디가 마스터를 찾아간 것은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인간의 세계에서 답을 찾을 수 없기에 초월적 존재를 바라봐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프레디가 찾은 마스터는 영성(靈性)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작가이자 의사이며 핵물리학자이자 이론 철학자였다. 물론 신도들을 사로잡기 위한 허풍이 섞여 있었겠지만, 그의 화려한 언변을 폭넓은 독서가 뒷받침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프레디는 외부인이 마스터의 궤변을 논리적으로 지적하자 상대방을 주먹으로 응징할 정도로 종교 활동에 몰입한다.

프레디는 사진사이기도 하다. 백화점에서 가족사진을 찍다가, 세상이 행복한 곳인 줄만 아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를 못 참고 폭행한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완벽한 줄 알았던 교주, 세상의 모든 욕망에 얽매여 살고 있었네


시간이 흐를수록 프레디가 마스터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나약함이다. 그는 선상에서 누드 파티를 하는 등 성적으로 지나치게 방종하며, 술과 마약을 즐겼다. 가족들에게 딱히 존경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한 번은 재단의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여기선 사람을 낫게 하는 게 불법이냐”며 경찰의 행위를 단체 탄압으로 몰고 가려고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세상의 욕망에서 초탈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강하게 얽매여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스터는 재단 자금 유용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마스터의 부인은 남편에게 사람들 앞에서 약한 면모를 노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뭐든지 해도 좋다. 내가 아는 사람들만 모르면 된다.” 거대한 종교 단체를 끌고 가기 위해서 그는 완벽해야 하고, 연약한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약한 사람들이 의존하는 마스터 역시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경찰에 함께 끌려간 두 남자가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마스터란 게 있을까


지난주에도 소개했듯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구원이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사유한다. ‘씨네프레소’에서 앞서 다룬 바 있는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팬텀 스레드’에서는 유년기의 정서적 결핍으로 고통받던 주인공들이 인생에 ‘사랑’이라는 구원의 빛이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봤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프레디의 모습에서 세상 밖으로 탈주하고 싶은 욕망이 읽힌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마스터’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구원해 주길 기대받는 스승의 인생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본다. 아마도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강인한 내면을 갖고 있어 마스터의 자리에 올랐겠지만, 한번 마스터가 돼버리면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그가 끌고 가는 단체는 그 자신보다 비대해져서 그의 실수를 용납하기 어려워진다. 자꾸 남들 안 보는 데서 술과 마약, 성적 일탈을 일삼으며 마음속 고통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마스터의 부인은 왜 그가 배에서 종교단체를 끌고 있는지 설명한다. 바다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세상의 시비에 걸릴 가능성이 낮단 것이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종교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해 한 분야에 통달한 마스터를 만나기가 더 쉬워졌고, 그들은 완벽함을 요구받는다. 특정 분야에 전반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라도 세부 영역에서는 강약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에겐 약점을 갖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 외려 그 사람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도 전문가로서 한마디 해주길 바라는 게 대중매체의 속성이고, 그들은 모든 질문에 답을 척척 내놓는 만물박사가 돼야 한다.  

영화는 구원자를 자처하며 완벽함을 연기해야 하는 마스터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사유한다.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감독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난해한 주제를 모호한 방식으로 끌어가는 영화다. 그렇기에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등 당대 최고 연기파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칼로 찌르려는 검사들처럼 날카롭게 주고받는 대사 속에서 ‘흠결 없는’ 마스터의 허상이 서서히 드러난다. 구원을 찾으려는 이는 완벽한 사람에게 의존할 수 있지만, 상대가 온전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자신과 그를 동시에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전달된다.  

‘마스터’ 포스터. <사진 제공=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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