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 리뷰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설명할 때 늘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폭력성’이다. 모든 작품을 통해 폭력적인 신(scene)을 다수 삽입하며 그는 지지자와 반대파를 동시에 얻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폭력이 갖는 의미는 ‘과잉’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스타일리시’로 표현되기도 한다.
‘장고:분노의 추적자’(2012)는 타란티노 영화의 폭력성이 영상미와 오락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서사를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장고(제이미 폭스)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흑인 노예였던 그는 극한의 폭력을 당하며 내면에 슬픔과 분노를 응축해 가고, 노예 주인을 향한 폭력을 통해 울분을 한 번에 터뜨린다.
노예였던 남자, 현상금 사냥꾼이 되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한때 노예였던 장고는 지금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유능한 현상금 사냥꾼인 킹 슐츠(크리스토퍼 왈츠)가 아직은 노예였던 장고에게 동업을 제안한 이후부터다. 슐츠는 수배범을 같이 잡으러 다니는 조건으로 장고에게 자유와 수입을 약속했다.
장고가 생면부지 슐츠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내를 찾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고는 같은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브룸힐다(케리 워싱턴)와 사랑에 빠져 도망치다가 잡힌 아픔이 있다. 두 사람을 노예로 부리던 백인 주인들은 그의 아내에게 채찍질하며 상처를 남겼다. 장고는 어딘가에 잡혀 있을 아내를 찾기 위해 살아남아야만 했고, 그 방법으로 슐츠와의 동업을 택한 것이다.
‘아내 구출’을 위해 ‘노예 상인’ 연기를 택하다
현상금 사냥 사업은 기대보다 잘 풀리고, 두 사람은 단순 동업자 관계를 넘어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된다. 어느 날 슐츠는 장고 아내가 잡힌 농장이 어딘지 알게 되고, 장고에게 노예 상인인 척 연기하라고 권한다.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서는 죽임 당할 것이 뻔하니, 농장의 노예를 사들이려는 것처럼 속여 전략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장고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인 ‘아내 구출’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노예 상인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노예 상인이 되는 건 비록 잠시간의 연기일 뿐일지라도 그의 양심에는 어긋난다. 장고가 거짓으로 노예 상인 연기를 하더라도, 이를 알 리 없는 흑인 노예들은 장고의 행동 때문에 상처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다면 아내와 재회할 기회를 영영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아내를 데리고 있는 농장 주인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악질 중의 악질로 소문난 데다가, 각종 총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덤벼서는 자신과 아내 모두 다칠 뿐이다. 상대를 충분히 안심시킨 상태에서 뒤통수를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안이 없었던 그는 노예 상인을 연기하길 선택하고,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괴로움을 겪는다. 다른 흑인이 눈앞에서 학대받는데도 외면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심지어 자신이 말렸다면 흑인 노예가 목숨을 건질 뻔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캔디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흑인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해서는 노예 상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이 거짓으로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영화의 폭력성은 장고의 다소 윤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숱한 폭력 장면을 통해 그가 싸우려는 ‘노예 주인’ 또는 ‘노예 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너무 막강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노예 제도는 배우자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을 정당화할 정도로 야만적이다. 또한 노예끼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안구를 뽑겠다고 달려들도록 강제하는 힘이 있다.
이처럼 견고하게 쌓인 제도에 치명타를 입힐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이미 장고는 아내와 도망치다가 붙잡혀서 폭력을 당한 기억이 있다. 준비 없이 무작정 덤벼서는 자신과 아내 모두 희생될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노예 상인 행세를 하며 참고 또 참는다. 자신을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흑인 노예들에게 “눈을 깔고 걸으라”며 “나는 백인보다 더하다”는 모진 말도 내뱉는다.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을 전략적으로 외면하는 장고의 선택은 윤리적이진 못할지라도 유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가장 윤리적인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장고가 인내하는 동안 목도했던 폭력은 모두 그 안에 증오로 응축된다. 영화 후반부 장고가 노예 주인에게 극도의 폭력으로 복수할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노예를 가축처럼 부리던 백인들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죽어갈 때, 관객은 그것이 유일하게 윤리적인 결말이라고 여긴다. 마치 장고에게 잠시 흑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게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폭력성을 통해 스타일·오락성·서사를 완성하다
‘장고:분노의 추적자’는 타란티노의 여러 복수물 중에서도 특히 팬이 많은 작품이다. 폭력적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그의 강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울러 서부극에 무협 영화 요소를 가미한 연출이 시선을 끌고, 주연 배우들은 타란티노 특유의 긴 대사 속에서 연기 내공을 드러낸다.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이 영화는 1억달러(127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4억2536만달러(5426억원)의 글로벌 티켓 수입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본상과 남우조연상(크리스토프 왈츠)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