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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리와인드 Jul 09. 2019

밀회가 초래한 극단적 질투와 비극 '저수지의 피크닉'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영화 '저수지의 피크닉'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 영화 '저수지의 피크닉' 스틸컷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삶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는 되돌리지 못하는 상황과 결과를 초래한다.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은 현대인들에 여러 이성과 가벼운 관계 혹은 다른 이성들과 동시에 교제하는 삶과 한 이성을 택하고 진지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삶 중 어떠한 삶이 우리의 삶을 더욱이 풍요롭게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성적 관계는 가족, 도덕성 그리고 우리 삶의 다른 모든 부분과 분리할 수 없으므로 성적 기회를 이용하거나 악용하지 않는 후자를 선택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많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자는 반드시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이를 명백한 희생(sacrifice)으로 칭한다. 우리는 선택과 희생을 통해 상호 간 긴밀하고 진지한 관계를 형성해야한다. 교제하는 대상을 단순히 대체재 성격의 이성으로 여길 시 큰 문제점이 초래된다. 대체재의 대상이 그 상대 외도를 파악한 순간 그들도 가벼운 존재가 됨과 동시에 배신당한 이에게 통제하기 힘든 분노가 초래되어 수많은 위협을 가할 상태가 되어버릴 수 있다. 영화 ‘저수지의 피크닉’은 도시를 떠난 아리따운 여성 알리시아가 성적 기회를 통제하지 못하며 초래된 남자친구 브루노와 알리시아와 외도 중인 틴초 간 극도의 갈등과 종말을 다룬다.  


평화로운 저수지에서 피어나는 의심과 욕망 


저수지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저수지에는 위협적 존재인 독성분이 있는 거북이가 도사리고 있다. 표면적으로 즐거운 피크닉 속 알리시아와 외도상대 틴초는 저수지에 방문하기 전부터 차 안에서 밀회를 즐긴다. 첫 장면부터 외도하는 씬을 배치하여 이들의 관계가 곧 독의 거북이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저수지에 먼저 도착한 남자친구 브루노는 알리시아와 그가 나누는 대화의 뉘앙스와 주고받는 눈빛을 보며 외도를 의심한다. 브루노의 의심은 도시와 시골의 이분법적 갈등으로 전유된다. 브루노는 시골청년을 야만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존재로 칭하며 외도의 분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시골청년 틴초 또한 경쟁자인 브루노에 대한 분노와 도시인의 텃세를 맞받아친다. 서로에게 그들은 눈에 가시이자 제거의 대상이다. 이때 날카로운 창, 낚싯바늘, 돌 등 폭적적 이미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강조한다. 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이빙을 하는 장소가 있는데, 시골청년 틴초는 먼저 다이빙을 한다. 물 속 날카로운 창이 곳곳에 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다이빙을 하려는 브루노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브루노는 다이빙을 하다 결국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고 자신을 해치려한 톨로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를 감싸며 브루노의 분노를 과민반응으로 여긴다. 


감정의 골이 깊어가는 상황에서 브루노가 외도의 흔적이 담긴 알리시아의 핸드폰을 확인하며 갈등은 극에 달한다. 한 이성을 선택하여 진지한 관계를 추구하는 희생대신 쾌락은 선택한 알리시아의 과도한 욕망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브루노는 더 이상 이성적 존재가 될 수 없다. 분노와 배신감이 그를 지배하게 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다. 이후 알리시아와 틴초의 적반하장 태도는 비극적 상황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칼을 들고 알리시아와 틴초를 위협하지만 브루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역력하다. 단순히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 과정에서 틴초가 브루노를 도발하자 결국 우발적으로 틴초를 찌르게 된다. 이성을 배제한 분노는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후 브루노의 행동은 광적인 객기로 번지게 된다. 알리시아를 폭행하고 귀를 물어뜯을 뿐만 아니라 은폐를 위해 사건현장과 상황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성적 기회를 통제하지 못한 알리시아의 선택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한 브루노의 폭력은 결국 파멸을 초래한다.  


“젠더폭력이 팽배한 우루과이의 사회와 온전히 선한 자는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된 Q&A에서 베르나르도 안토나치오, 라파엘 안토나치오 감독과 클라라 찰로 제작자는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라인을 긋지 않아 관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했음을 강조했다. 갈등의 중심 알리시아, 시골을 무시하는 도시인 브루노, 외도의 대상 톨로 모두 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리시아를 폭행하는 브루노의 모습은 우루과이 사회에 팽배한 젠더폭력을 내포하며, 도시인들이 시골을 야만적이고 무식한 존재로 고려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낚시를 하는 틴초에게 도시인 브루노가 야만적 행동이라고 지적함과 동시에 우루과이에서 고급음식인 스시를 매주 먹는다는 자랑을 통해 시골인은 하등적 존재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도시와 차별점을 두려고 한다. 이러한 설정 또한 우루과이에 팽배한 문명과 야만의 갈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 영화 상영 후 관객의 질문에 답변하는 디렉터     ©오승재


그리고 영화의 결말과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발적 분노가 살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 살아남기 위해 주변인을 경쟁자로 여기는 상황과 낙오자에 대한 미흡한 복지 속에서 우리의 삶은 분노로 가득차게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래된 분노를 어떻게 수용하고 감내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표출’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성을 배제한 원초적 본능 분노는 결국 브루노가 벌인 살인. ‘저수지의 피크닉’은 비이성적 분노의 폐해를 지적하며 관객들에 경각심을 제공한다. 제한된 공간, 적은 시간,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연기와 눈빛만으로 스크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계기가 필요한 시점

 

저수지의 피크닉 영어 제목은 ‘In The Quarry’ 이다. Quarry는 채석장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산물이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며 상처를 가했다. 채석장은 영화 속 폭력의 은유이다. 서로에게 남긴 물리적, 정신적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 영구적 상처를 남겼다. 우리 모두 브루노, 알리시아, 톨로가 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한 이성과의 진지한 관계를 추구하고 분노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인 ‘저수지의 피크닉’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 접근, 젠더이슈 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글 / 씨네리와인드 오승재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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