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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리와인드 Jul 11. 2019

IT 천재가 팀플 무임승차한 그녀를 죽인 사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영화 '토막 살인범의 고백'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 영화 '토막 살인범의 고백' 공식 포스터     © DAUM 영화


"강간 후에 토막 살인하여 시체를 유기한다."

 이는 결코 참신한 이야기가 아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영화가 잔혹 범죄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잔혹 범죄를 흥밋거리로 취급했다는 비난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잔혹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 두 가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작품을 평가하게 된다.


(1) 같은 소재를 다룬 기존의 영화와 비교해서 어떠한 지점을 차별화했는가?

(2)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이며,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잔혹 범죄'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꼭 필요했는가? 


토막 살인범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피트와 클라라는 과제를 하며 가까워진다    ©DAUM 영화


정보학을 전공하는 피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트는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클라라와 함께 과제를 하게 된다. 클라라는 정보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과제 수행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피트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그가 마음의 문을 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피트는 클라라에게 사랑에 빠지고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클라라는 그의 사랑을 거절하고 만다.


 피트는 교수에게 논문을 인정받는 우수한 학생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이 걱정된다면서 가까운 곳에 사는 걸 고집하고, 유일한 친구마저도 피트가 성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시한다.
 

 피트의 유일한 낙은 직업여성과 유료 음란 채팅을 하는 것인데, 그는 클라라에게 차인 다음에도 채팅에 들어가서 상대에게 과감한 성행위를 요구한다. 이때 채팅 상대가 섹슈얼한 어조로 그를 '소년'이라고 칭하자, 피트는 이에 크게 분노한다. 


 이러한 점을 살펴봤을 때 피트에게 있어서 음란 채팅은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는 행위가 아닌, 어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나중에 그가 클라라를 강간하는 행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클라라의 시체를 토막 내는 피트     ©DAUM 영화


클라라를 강간하고 토막 살인한 피트는 주변 사람들에게 범죄 사실을 들킬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거짓말을 둘러댄다. 그 과정에서 사회 부적응자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타인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까지 내밀게 된다.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서 사회에서 미성숙한 존재로 인지되었던 피트가, '토막 살인'이라는 사회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 행위가 계기가 되어서 사회와 소통하는 존재가 된다는 성장 서사는 아이러니하여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러한 서사 구조로 인해 '사회 부적응자가 겪는 소통의 단절'이라는 영화의 주제는 부각되지만, 강간 및 토막 살인은 끔찍한 잔혹 범죄이므로 관객이 이에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클라라의 내장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는 등, 범행 장면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려졌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그렇기에 영화는 이러한 독특한 서사 구조 이외에도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라는 하나의 수단을 더 추가하여서 메시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은 인터넷에서 얼마나 많은 토막 살인을 했나요?


▲ 컴퓨터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피트     ©DAUM 영화


피트는 평소에 거의 외출을 안 하지만 크게 불편함을 못 느낀다. 교수님이 주시는 논문 피드백은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고, 식사는 배달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며, 성욕도 음란 채팅을 하면서 풀 수 있다. 심지어 피트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 시신을 토막 내는 법까지 인터넷으로 배운다.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 사회부적응자인 피트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실은 이 영화 자체가 '인터넷'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가상의 도시에 위치한 대학교 캠퍼스인데, 영화 '토막 살인범의 고백'을 연출한 리누스 데 파울리 감독은 이는 인터넷 공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캠퍼스에서는 등장인물이 모두 영어를 쓰면서 의사소통하지만, 이들이 쓰는 영어 억양은 다양하다. 감독은 이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 사건에 의문을 품은 사설 탐정과 피트     ©DAUM 영화


피트와 클라라가 함께 한 정보학 과제는 '고스트 머신(Ghost machine)'에 관한 연구다. 이는 타인의 서버를 해킹해서 디지털 흔적을 멋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걸 이용하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쁜 짓을 할 수 있어. 하지만 나쁜 짓은 나쁜 짓이지."

 나중에 나쁜 짓을 하게 되는 피트의 입에서 이 대사가 나온다는 건, 영화가 결코 잔혹 범죄를 미화할 생각이 없다는 의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현대인은 인터넷 속 자신의 공간인 SNS에 자신의 기록을 자유자재로 올리고, 원한다면 그 기록을 언제든지 클릭 한 번에 지울 수 있다. 시체를 훼손하여 범행 흔적을 완벽히 지운다는 '토막 살인'이라는 소재는, '고스트 머신'과 같이 행동 흔적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징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클라라 실종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자, 피트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거짓 목격담을 진술해주기에, 피트는 곧바로 무혐의로 풀려난다.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건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줬던 피트를 감싸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사건 당일에 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게 되면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까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피트 역시 클라라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에게 클라라와 자신은 연인 사이였다고 거짓 진술을 한다. 그가 심히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늘여놓는 부분에서 이는 단지 자신의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 아닌, 클라라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가 기억을 조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은 SNS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올리기보다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해서 올린다. 때로는 여기에 거짓을 보태면서 정보를 조작하기도 한다. 우리는 SNS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 대학교 기숙사 방에서 클라라를 죽인 피트     © DAUM 영화


 인터넷 세상 속에서 현대인은 타인을 쉽게 비방하고 상처준다. 클라라 역시 피트의 고백을 거절할 때 그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피트가 불면증에 시달려서 괴로워하자, 이에 대한 소문을 들은 클라라는 피트가 사는 기숙사 방을 찾아간다. 피트는 혼자 있고 싶어 했지만, 클라라는 막무가내로 방에 들어와서 그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피트가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는 걸 꺼리자, 클라라는 그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걸 이해하지 못하다가 급기야 화를 내면서 그를 모독하는 말까지 내뱉는다. 


 인터넷 사회에서 비난받은 대상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네티즌은 대상에게 연민을 느끼고 악플러를 비난한다. 피해자가 더는 대중의 관심을 원치 않다는 의사를 밝혀도,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렇지만 이것도 한때이며 네티즌들은 또 다른 비난거리를 찾아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피트와 클라라의 관계는 이러한 네티즌 사회의 폭력적인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그릇되고 거짓된 소통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익명성'이다. 피트는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캠퍼스를 나서려다가 직원 아주머니를 만난다. 이때 이들은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 서로에게 가명을 말하면서 통성명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인터넷 공간의 상징하는 캠퍼스를 벗어난 이후부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며, 마지막에는 진정한 우정을 나누면서 자신의 본명까지 밝히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소통은 인터넷 밖 세상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 토막 살인범 피트의 범행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 DAUM 영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토막 살인범의 고백'은 한국에서 정식 개봉이 결정된 상태다.

 이 작품은 잔인한 토막 살인 장면이 있기에 결코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공간을 독특한 방식으로 형상화한 이 영화는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씨네리와인드 김재령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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