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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Apr 05. 2019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

고독에 관한 책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말하곤 한다. 사랑을 하고 애인을 사귀라고. 그리고 결혼을 하라고. 고독에 관한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결책은 사랑과 결혼이다. 그런데 과연 사랑과 결혼은 고독에 가장 효과적인 치유책일까. 


모든 사람이 외로움의 해결책으로 쉽게 제시하는 결혼을 거부하고 독신을 각오한 사람에게 고독은 치열한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어떤 독신주의자가 말하길 독신주의자에게는 더 많은 친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건 독신을 택한 사람이라면 누구이건 간에 피해 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고독을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일지도 모른다. 


젊은 작가 6인의 테마 소설 <독신>은 갖가지 독신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 6인이 대부분 젊은 여성이기 때문인지 초점은 여성에 있다. 내적 외적 이유로 아직은 독신이거나 독신임을 주장하는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림자의 어조가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한 번도 나는 결혼하지 않았다. 내가 기다려야 할 얼굴들이 밀려온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목이 점점 길어진다. 금강산이든 한라산이든 울릉도든, 그리운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이 긴 목이 기꺼이 다리가 되어줄 테니까.
- 김현영, 웨딩 웨딩드레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적이고 멋지게만 보았던 독신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보다 심각한 고독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과 결혼하고도 혼자나 마찬가지인 사람 중 누가 더 고독할까, 하는 것이다. 


혼자여서 고독하다면 그건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독은 어쩌면 누군가 내 곁에 있는데도 느끼는 외로움 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내 옆의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언제까지나 낭만적인 둘만을 꿈꾸고 있을 수는 없다.
혼자인 고독을 철저히 알지 못한다면 
둘이서 고독하지 않은 내일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고독하다고 해도, 죽음 앞에서의 고독만큼 처절하고 치열한 것이 있을까. 그건 상상만으로도, 아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독일 것이다. 누구 하고도 같이 갈 수 없는 길이 죽음의 길일 테니까. 서점에서 너무 얄팍해서 눈에 띄었던 책, 마르그리트 뒤라스<이게 다예요>는 결코 얄팍하지 않다. 얼마간의 의식불명에서 깨어나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연인과 나눈 대화나 삶의 짧은 단상들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나는 뒤라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붉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어쩌면 뒤라스라는 작가가 가진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뒤라스는 다작의 작가이면서 사회운동가였고,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그녀의 삶을 생각하면 한순간이라도 육체적으로 건 정신적으로 건 쉼이 있었을까, 싶다. 이런 열정의 작가에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올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한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녀에게 예고된 죽음. 바쁘게 살아왔으므로 육신의 부자유와 죽음의 공포는 더 큰 고독을 안겨다 주지 않았을까.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뒤라스는 여전히 열정적이다. 사랑을 멈출 줄 모른다. 떠나는 자의 눈물도, 후회도 없다. 남은 시간을 더 열정적으로 연인과 세상과 글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난,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내일부터. 언제라도. 난 책 한 권을 새로 시작하고 있어... 


 <이게 다예요>는 죽음이라는 고독의 극한으로부터 자유로운 열정의 화신 뒤라스를 느낄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때로는 초연하고 때로는 집착하는 뒤라스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이 세상에 고독하지 않은 인간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의 차원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독은 구질구질한 질병이 아니다.
고독은 우아하고 섬세한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뒤라스처럼 다양한 삶을 살지 않는다 해도 현대인은 바쁘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 쏟아지는 정보들, 하루하루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 적응하려면 누구나 고독할 사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 없음에도 고독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대도시가 혼자가 되기에 더 좋은 곳이라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몇 리를 걸어가야 다른 집이 나타나는 산골마을보다 아침저녁으로 누군가와 원하지 않아도 부딪히고 마는 도시에 사는 우리가 더 혼자이고 더 고독하다는 것이다.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낸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속 주인공과 겹쳐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 그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지만 그 고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고독을 익숙한 그림자로 가진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 혹은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우리가 그의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는 건 고독에 대해 담담한 태도를 취하는 그 독특한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야, 그래,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라고 낮게 읊조리는 듯한 느낌. 


대부분 그의 소설 혹은 다른 저작들에서 발췌된 내용들로 이루어진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단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해낼 수 없게 만든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문장이 내 심장에 와서 박히고 책을 펴고 덮을 때마다 그의 소설의 내용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된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는 재편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나는 가끔 아주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한밤중에 깨어난 그 적막한 고독 속에서 아무도 깨울 수 없을 때 그의 책을 꺼내서 아무 페이지든 펼치고 읽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항상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은 그 가치를 상실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이미 상실된 것이고 아직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실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나에게 내가 원하면 언제든 함께 해주는 친구이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책 목록}


1. 독신

젊은 작가 6인이 독신을 테마로 쓴 소설집. 김현영의 웨딩 웨딩드레스, 류소영의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 박자경의 어둠보다 익숙한, 윤애순의 영화가 끝나고, 이신조의 콜링 유, 전혜성의 섹스에 관해 너무 지껄인 다음날이 수록되어 있다.


2. 이게 다예요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1994년 11월에서 1995년 8월까지의 일기를 엮은 책. 작가 사회운동가 영화감독으로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뒤라스가 긴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기적처럼 회생한 후 죽음을 예감하며 쓴 기록. 


3. 한없이 외롭고 슬픈 영혼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산문집.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랑의 의미,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 자신이 쓰는 글들의 주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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