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캔맥주 같은 책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홀가분하게 혼자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빡빡한 일정 없이 떠나는 여행이면 더욱 좋다. 하나의 풍경이 익숙해질 때까지 머물고 싶을 때까지 머물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문득 떠나고 싶어 지면 가볍게 체크아웃하고 다시 무작정 떠나고, 그리고 문득 나의 그 평범하고 지루했던 일상이 새록새록 그리워지면 뒤를 돌아서 곧장 돌아오면 되는 그런 여행.
그렇게 훌쩍 떠나고 싶지만 늘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돌아오면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떠나는 것을 열망하는 동시에 떠나는 것이 두렵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 로드무비가 있다면 소설에도 그런 것이 있다. 무라카미 류의 <쿄코>는 길 위에서 쓰인 듯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매력적인 여성 교코를 따라 일본의 기지촌에서부터 뉴욕과 미국 동해안을 종단하여 마지막에는 쿠바에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교코의 곁을 지나쳐가는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 망명자, 에이즈 환자, 게이 등등 다양한 삶의 편린을 가진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쿄코의 마지막 목적지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이다. 쿠바는 내게 전설의 게릴라 체 게바라와 낚시를 한없이 사랑했던 헤밍웨이와 시가와 럼주를 떠올리게 한다. 소멸해가는 것들의 아득한 아름다움을 지닌 쿠바.
교코의 쿠바처럼 나는 내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를 찾고 있다. 세상의 끝이며 시작인 나라. 교코를 미국을 거쳐 쿠바까지 도착하게 만든 것은 그리움이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주던 호세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던 막연하기만 했던 그 삶에 한줄기 희망을 준 사람에 대한 아주 오래된 그리움.
여행을 떠날 때 필요한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큼지막한 편리한 가방과 적당한 경비, 그리고 갈아입을 몇 가지의 옷, 후일 추억을 도울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와 작은 수첩 정도, 그리고 엽서를 준비하는 건 어떨까. 내가 떠난 그곳에 남아 나를 기다릴지 모를 이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
윤대녕의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은 편지 형식으로 쓰인 여행 산문이다. 제목 그대로 여행지에서 차분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감성적인 작가 윤대녕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쿠바, 일본, 그리고 제주, 낙산, 고창, 광화문까지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보내온 연애편지. 어느새 나도 그가 그녀에게 들려주는 얘기를 따라 제주 갈치회 한 접시를 먹고 있고, 태국 파타야의 라운지체어에 앉아 있고, 고창 선운사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그가 떠난 여행의 감촉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을 돕는다.
나는 윤대녕 혹은 누군가의 그녀가 되어 여행지에서 보내온 이런 아름다운 편지를 받을 수 있다면 여행을 떠나지 않고 남는 쪽을 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여행 산문의 곳곳에서는 그의 소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닭과 비의 한 대목은 그의 소설 <추억의 아주 먼 곳>을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윤대녕의 모든 소설이 어쩐지 여행지에서 쓰인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나는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그만큼 그것에 구속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살아오면서 그때마다 집착한 것들이 있습니다.(…)
라는 책의 한 구절처럼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은 무소유와 집착, 혹은 자유와 그리움이 빳빳하게 충돌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의 자유로움에 발목을 잡는 그 여인과 윤대녕은 이별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풍경이 한결 더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던 건 그가 그녀를 떠나온 곳에 남겨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무한의 자유와 맞닿아있다. 떠나온 곳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 그 자유와 여유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 혹은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 떠나는 여행은 어쩐지 불안할 것만 같다. 그래서 윤대녕처럼 끊임없이 두고 온 것들에 대해,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루키처럼 아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버리는 건 어떨까. 그것도 아주 머무를 것처럼 도착한 곳이 일상이 된다면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줄어들지 않을까.
가끔 빽빽한 일상에 지칠 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을 펼쳐 든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 이 책을 덮고 나면 당신의 망막에는 하나의 존재가 맺힐 것이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짜인 하루하루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세상을 관조하는 한 마리의 고양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속한 모든 것을 떠나서 낯선 나라에서 보내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은 그런 한가로운 이국에서 삶에 대한 진술이다. 가는 곳곳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쇼핑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자동차로 인해 생긴 문제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고, 그리고 보스턴 마라톤까지.
42킬로미터를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일부러 이런 지독한 꼴을 자처하는 거지? 이래 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뜨거운 욕조에 잠긴 채로 바늘 끝으로 발바닥에 부풀어 오른 물집을 따낼 무렵에는, `자아, 이젠 다음 레이스에서는 더 분발해야지`하고 다시 마라톤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여행은 마라톤을 끝낸 후 마시는 차가운 캔맥주 같은 것이 아닐까. 천하의 하루키의 여유로운 일상을 엿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누구든 주어진 시간은 같다. 그 시간을 종종거리면서 숨 가쁘게 뛰어다니건, 여유롭게 걸어가건, 가끔 앉아서 멍하니 보내건, 그건 어쩌면 마음에 달린 일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에서 얻어지는 건 아닐까. 일상의 소소함을 다정하게 기억하는 하루키처럼.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인생이라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행의 길 위에. 그 길고 긴 길 위에서 우리는 잠시 잠깐의 휴식을 위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떠나보내야 한다. 교코처럼 그리운 곳으로 떠날 수 없는 나는 윤대녕의 그녀가 되길 꿈꾸다가 결국 차가운 캔맥주로 갈증을 달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길 위에 서 있는 나는 아직 어떤 여행도 포기하지 않았으니.
어릴 적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준 호세를 찾아 미국으로 간 교코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호세를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뉴욕과 미국 동해안을 종단하여 마지막에는 쿠바로 건너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주인공은 교코이지만 각장은 여행 도중 교코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1인칭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교코]는 무라카미 류가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한 여자와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자유롭게 써나갔다`는 저자의 머리말에서처럼 우연히 길에서 여인을 만나고 길 위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낯선 길 위에서 마음을 흔드는 풍경과 만날 때,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날 때마다 그녀를 떠올린다. 작가가 도착한 여행지의 정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색은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하루키의 2년 간의 생활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 원색 사진이 돋보이는 책으로 부제는 <마라톤과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이다.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거리의 표정, `고양이가 기뻐하는 비디오`의 놀랄 만한 효과, 연말에 차를 도난당해 곤란했던 일 등의 일화와 함께 귀국 후 고베 지진의 참상을 보며 느낀 생각 등 하루키의 일상적이고도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