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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Apr 26. 2019

가끔씩 찾아오는 불면의 긴 밤에

수면을 위한 책 사용법



책만 보면 잠이 온다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책만 들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정신이 날카로워지면서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늘 수면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졸리다고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예민해진다. 나는 후자이다. 그러므로 잠자리에서 어려운 책은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리듬감 있는 쉬운 문장도 좋지 않다. 그 리듬에 젖어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만다. 한 페이지를 넘겨도 문단이 나뉘지 않는 작가의 책도 좋지 않다. 졸리다고 해도 문단의 중간에서 책 읽기를 멈추기는 쉽지 않고, 그러다 보면 잠들기 어려워진다.


다음은 나의 수면용 책 목록이다.


첫째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 책은 일단 얇고, 번호로 된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챕터들이 그다지 길지 않다. 그래서 졸릴 때 언제든 끊어 읽기가 쉽다.


이를테면 책 읽기를 그만 둘 지점이 빈번히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별히 복잡하고 애매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펼쳐서 어디를 읽어도 된다. 수면용으로 가장 적당한 책은 일단 무게가 가볍고 그 책을 이미 읽어서 내용이 전체적으로 파악되어 있고 문장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산뜻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꿈을 꾸고 싶다면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도 좋다. 32개의 서브젝트마다 요리가 등장하고 그에 걸맞은 사연을 지닌 인간이 등장한다. 무라카미 류처럼 헬기를 타고 이동하고 세계 곳곳의 특급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숙박하며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든 진귀한 요리를 먹는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둘째 예쁜 그림이 있는 책들.


예쁜 그림은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들고, 그리고 이런 책들은 글이 아주 짧다. 카트린 이야기, 라울 따뷔랭, 뉴욕 스케치, 얼굴 빨개지는 아이, 속 깊은 이성친구, 꼬마 니콜라 시리즈 등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들어간 책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또,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에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체스 노터봄 등 46명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글을 쓴 책그림책도 권할 만하다.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고 현재의 나를 사색하기에 좋은 그림과 그리 길지 않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셋째 이  책은 베고 자기에 아주 좋다. 두께가 웬만한 베개 높이다. 조르주 페릭의 인생사용법.


모두 9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사물들에 대한 지루할 정도로 세밀한 묘사 때문에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졸리다. 시몽크뤼벨리에라는 가상의 거리에 있는 한 건물의 입주자들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열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퍼즐 제작자 윙클레와 퍼즐 맞추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바틀부스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다.


세심함과 인내심, 타고난 손재주를 지닌 퍼즐 제작자인 윙클레는 바틀부스에게 퍼즐 500개를 제작해주는데, 퍼즐을 제작하면서 매번 다른 모양, 다른 방법, 다른 공략으로 바틀부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반면 남부러울 것 없는 재력가인 바틀부스는 오직 퍼즐 맞추기를 위해 10년 동안 수채화를 배우고, 20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보름마다 수채화 한 점씩을 그려 윙클레에게 보낸다. 이 수채화로 만든 윙클레의 퍼즐을 그는 20년간 맞추기로 한다. 그리고 맞추어진 퍼즐들은 다시 그것이 그려진 장소로 보내어 세척 용액으로 깨끗이 씻겨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의 상태, 즉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소설들이란 부제가 붙은 <인생사용법>은 사실은 무작정 졸리기만 한 책은 아니다. 내용에 익숙해지고 나면 흥미롭고 신기해서 읽는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수면용으로 선택한 까닭은 정말 만만치 않은 두께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읽을 엄두는 절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결말이 궁금해서 밤을 꼬박 새우는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그래도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아예 수면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 있다. 양을 세며 잠드는 책.  


진짜 잠 못 들던 시절이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획기적이다, 여겨서 샀다. 침대에 누워서 편안한 기분으로 책을 펼치고 로그우드 가족과 함께 양을 세면 된다. 실연이나 상처, 혹은 인생의 사소하고도 큰 고민들로 누구나에게 가끔씩 찾아오는 불면의 긴 밤에 들판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양들을 세면서 마음을 달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부모님이 읽어주는 나긋나긋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든 아이들은 남다른 감성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중에 심신이 고단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적 잠자리에서 부모님이 읽어주던 이야기를 생각하거나 혹은 그 모습만 떠올려도 누구보다 행복한 꿈을 꾸면서 편안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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