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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May 03. 2019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어

진실된 이야기와 거대한 괴물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자기가 뒤따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저녁때 집에 돌아오면 그 낯선 사람들의 일정을 근거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숙고하고 간단한 전기를 작정하며 자기가 어디로 갔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했다. 그리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시내 곳곳으로 자기를 뒤쫓아 다니게 하여 자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 철저히 기록된 연대기를 갖게 되었으며, 호텔의 객실담당 여종업원으로 임시로 일자리를 구하여 고객들이 지나간 자리, 그들의 방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증거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우연히 주운 전화번호 수첩의 주인을 찾아내기 위해 그 수첩 속에 적힌 인물들을 추적하기도 했다.


소피 칼과 마리아 터너


그녀의 일련의 기발한 작업들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면 당신은 소설가 폴 오스터의 팬일 가능성이 크다.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거대한 괴물'을 읽었을 때 마리아 터너라는 이 인물이 참 기발하고 자유롭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리아 터너는 폴 오스터의 머릿속에서 오롯이 탄생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마리아 터너의 작업과 삶은 현실에 있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그녀의 진짜 이름은 소피 칼이다.



적어도 내게는 폴 오스터 보다 생소한 인물인 소피 칼은 유명한 미술가라고 한다. 폴 오스터는 마리아 터너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이 일종의 예술가지만, 그녀의 일은 예술이라고 정의되는 창작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사진작가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들은 개념론자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작가로 여겼지만, 어떤 설명도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폴 오스터의 이 이야기는 소피 칼에 대한 아주 유용한 설명일 것 같다.


현실과 허구  


사진과 글이 교차하는 작은 책 '진실된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가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피 칼의 작업의 결과물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진실된 이야기'를 통해 소피 칼은 아홉 살 때부터 마흔아홉 살 때까지의 추억들,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 연인과 결혼, 이혼 등의 생애를 가로지르는 순간순간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앨범을 펼치고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소피 칼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그 사진을 본다. 사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에 글이 더해짐으로써 이 작은 책은 무한대로 깊어지고 넓어진다.



이 책의 제목은 '진실된 이야기'인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진실일까. 폴 오스터는 소피 칼이라는 현실에 상상력을 더해서 마리아 터너라는 허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소피 칼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진실된 이야기'는 1994년 초판이 출간될 당시 이미지와 글을 연결시킨 자전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평가되며 많은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소피 칼이 처음 시작했을지도 모르지만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가 보편화된 현재 이 방식은 SNS를 통해 누구나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듯 보이는 그 사생활에도 일종의 선별작업이 있고 그 왜곡에 더 깊은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진실된 이야기'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어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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