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무언가 갖고 싶어도 사 달라 조르지 않는 아이였다. 타고나길 물욕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2살 터울인 오빠의 영향 때문이었다. 오빠는 알뜰한 성향을 가진 사람인데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예민한 아이라 집안 사정과 상황에 따라 눈치 있게 대처한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오빠는 먼저 요구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늘 입에 괜찮아요를 달고 살았다. 부모님의 반응은 예상하다시피 ‘어린애가 속이 깊네, 착하네’였고. 이런 걸 옆에서 본 나로서는 당연히 학습이 될 수밖에. 부장님 이하 짜장면으로 통일되는 회사원처럼 탕수육이 먹고 싶어도 ’ 나도 같은 걸로‘를 반복했다. 그래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내가 엄마와 갔던 시장에서 보게 된 소꿉놀이 세트에는 꽤 혹했던 모양이다. 평소 같지 않게 ‘저거 갖고 싶다’ 표현했고, 엄마는 처음엔 안된다 하시다가 시험 100점 맞으면 사주겠다 약속하셨다. 내겐 ‘약속’이었지만 엄마에겐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가벼운 말이었던 것 같다. 다음 시험에서 나는 100점을 맞았고 소꿉놀이 세트를 갖게 되리라는 기쁨에 마음이 부풀었다.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기를 잠자코 기다렸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 부루퉁한 표정으로 며칠을 더 보내던 나는 참다 참다 폭발해 버렸다. 엄마는 당황하셨지만, 다음에 꼭 사주마라는 말로 무마하셨다. 결국 다음은 없었고, 내 손에 장난감 세트는 쥐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많이 기대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 것 같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불어나니까. 이제는 안다. 빠듯한 살림에 아이가 원한다고 다 사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아마도 내가 사 달라했던 게 장난감이 아니라 책이었다면 없는 돈을 쪼개서라도 사주셨겠지. 엄마를 전혀 원망하거나 그때의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사무치지도 않지만, 가끔은 그 약속이 지켜졌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내 안에 알게 모르게 남은 흉터가 하나쯤 줄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