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코인 체인지
파리를 떠나 2-3일 지나니 한국어를 안 하는 생활도 적응이 되는 것 같았지만, 성수기가 아닌 때에 한국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소도시에서 소도시로 가는 기차를 혼자 타야 하는 상황은 떨리고 걱정스러웠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가 맞는가! 가는 방향은 맞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의심스럽고 긴장되었다. 한국사람 없이 오롯이 모든 일정을 혼자 다녀보니 어릴 때 영어를 버린 내가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난 운이 그렇게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멘붕이 올 때마다 다행스럽게도 천사들을 만났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후 버스 티켓 머신 앞에서 서성거릴 때 먼저 티켓 사시던 할머니가 손주를 시켜 티켓 사는 걸 도와주셨다. 너무 고마워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다이제를 건넸다. 손주는 괜찮다며 사양한다. '다이제 진짜 맛있는데!' 손주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안녕한다.
언제나 그 도시에 도착하면 장 보러 나간다. 한 번은 숙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장은 잘 보지만 자꾸 내가 먹을 수 없는 이상한 걸 사 오게 된다. 그냥 물인 줄 알고 1.5L 3통을 샀는데 탄산수였다. 생각보다 내가 산 것들은 다 먹어야 하는 알뜰한 성격이라 따가움을 견디며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외국어를 잘했으면 설명서를 잘 읽어보고 샀을 텐데 언어의 능력이 없는 자가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물건을 사니 자꾸 빙구짓을 하게 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마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야 할 것이 있어서 다시 도전했다.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계산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동전을 꺼내보란다. 수많은 동전 중 아주머니는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동전만큼 가져가 계산해 주셨다. 상냥한 분이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동안 그 마트를 한 번 더 갔다. 외국인인 나에게 눈탱이 안 때리고 살뜰하게 계산해주셨던 아주머니가 고마워서 말이다.
콜마르로 가는 날. 기차는 3번 라인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런데 출발시간 20분 전부터 3번 라인에는 다른 번호의 열차가 서있었다. 보통 한국은 한대 가면 한대가 들어오는 방식이라 콜마르 가는 열차가 당연히 들어오겠지란 생각으로 기다리기만 했다면 내가 타야 하는 기차를 놓칠뻔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꼭 이렇게 아리송할 때면 실수한다는 걸 느낌적으로 알고 있기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긴장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때 한국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기들이 타야 하는 열차가 지나가면 내가 타야 할 열차가 들어올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시계를 봤다. 이제 곧 기차가 들어와야 할 시간인데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까부터 지속된 긴장감을 무시할 수 없어서 반대로 뛰었다. 그러자 어떤 프랑스 역무원이 나에게 뭐라 뭐라 한다.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나의 티켓을 보여줬다. 말이 안 되니 보여줘야지! 그러자 그 사람은 다른 직원에게 물어 콜마르 가는 기차가 어떤 건지 정확히 알려주셨다. 같은 라인 뒤편에 열차가 서 있었다. 정말 외국은 한국과 달랐다. “메르시” 감사의 인사를 외쳤다. 예전 여행할 때에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날에는 꼭 실수를 했기에 이번에는 그 불안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정확하게 상황을 해결해주는 건 나에게 친근한 한국 사람이 아닌 그 나라 사람들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꼭 집 돌아가면 내가 싫어하는 외국어 공부를 해야겠다. 뭔가 난 앞으로도 한국 사람들 많이 안 가는 그런 곳이 가고 싶어 질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안 하겠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