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가 3살 될 무렵 이미 아이와의 해외이민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자폐스팩트럼 특수교육이 좋은 미국, 캐나다 등등을 알아보다가 갑자기 인도네시아가 떠올랐다. 아예 인도네시아와 아무런 연이 없이 한국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회사 출장업무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출장을 다녀오는 기점으로 뭔가 다시 갈 운명인가 싶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옛날의 향수를 느끼다가 돌아와서는 바로 코로나가 심각해졌다.(그 다음 날 바로 출국 금지가 떨어졌다.) 이 후로 또 한국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 한참을 까먹고 지냈었더랬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나도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 생활에 상당히 지쳐있을 때 갑자기 '발리'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지락실'에 발리가 소개되면서 주변사람들이 발리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해서.. 였던 걸 수도 있겠다 싶다.)
내 나름대로 '발리'로 가겠다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살다 보니 어디서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하더라.
발리에서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평화롭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상을 기대하기보다,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나의 태도 변화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아이를 교정하려 애쓰기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아이의 세상에 녹아들고,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키워 보고 싶다.
숫자와 행성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나는 온전히 그 세계를 함께하는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아이가 반복하는 숫자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 함께 별의 수를 세어주며 아이의 눈높이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꼭 안아줘"라고만 말할 줄 아는 아들이 매번 안아달라 할 때마다 매번 안아줄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이다.
복잡하고 사람이 북적이는 공간이 힘겨운 내 아이에게는 자연이 가장 큰 위로가 되더라. 그래서 나는 매주 두세 번, 산과 바다로가 아이가 맨발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모래 위를 걷고, 바람을 느끼면서 웃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내가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향성이다.
그동안은 일에 치여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안도하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맨발로 마음껏 뛰노는 반짝이는 아이의 눈과 그 에너지를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발리에서 마주할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 역시 아이와 함께 다시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며, 나도 그 시선을 따라 새로운 각도로 삶을 바라보고자 한다.
발리에서 나는 아이와 함께 진정으로 웃고, 서로 눈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곳은 단순히 우리가 사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