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자폐스팩트럼
한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화제가 되었다. 자폐스팩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나 역시 그 드라마를 보며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전까지는 아이의 자폐스팩트럼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이해할까 고민했고, 때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영우 덕분에 그런 설명이 좀 짧아져서 다행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보셨어요? 저희 아이도 그런 비슷한 특징이 있어요."라고 말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그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점에 정말 감동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치료사 분들께 한분 한분 그런 드라마에 대해 어떤 측면으로 바라보느냐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그렇게 달가워하진 않으셨다. 너무 자폐의 좋은 특징들만 밀집시켜 놓은 캐릭터라, 모든 사람이 자폐를 '천재'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될까 우려스럽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드라마 속 우영우를 보며 처음으로 나는 객관적으로 아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영우가 고래에 집착하듯, 내 아이도 자신의 우주에 집착한다. 수금지화목토천혜는 기본이고, 소행성, 위성까지 관심사를 확장해 이제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에 다다랐다. 허공을 도화지 삼아 손가락으로 행성의 궤도를 그리는 모습은 우리 아이만의 언어다. 그 작은 손끝에 그려지는 우주는, 내 아이가 바라보는 방식이며 나는 이제 이것을 내 아이의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 11월, 내 아들(태명 김해마)은 3.0kg로 아주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다. 임신 기간 동안 큰 문제도 없었고, (아 입덧을 24주 달고 살았던 것 빼고) 초음파 보러 갈 때마다 항상 너무 잘 자라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32주인데 벌써 아이가 나와도 될 만큼 건강하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수술 후 입원해서 퇴원할 때의 아이는 3.5kg였고, 조리원에서는 3번째로 큰아이로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기적 같이 순했다. 생후 70일 만에 12시간 통잠을 자주고, 이유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고 8개월에 뒤집기를, 18개월에 늦은 걸음마를 떼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귀여운 아이로 자라왔다. 그 시절 임신이 어려워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는 우연히 넣은 이력서로 출산 3개월 만에 면접과 입사를 동시에 해야 했고, 감사하게도 인도네시아에 계신 엄마가 1년 동안 봐주신 덕분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상함을 감지했던 건 28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내 말을 듣지를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잘하던 도리도리와 짝짜꿍 같은 모방행동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전) 남편을 닮아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가 싶었다.
당시 나는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복직을 해야 했고 인도네시아에 계신 엄마가 한국으로 오셔서, 중간중간 재택하는 남편이, 퇴근 후에는 내가 전담으로, 여러 사람의 손길을 받으며 1년 동안 아들을 돌보았다. 그때의 나는 일찍 결혼을 해 아이를 가진 탓에 주변에 평균 발달을 알 수 있는 비교군조차 없었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상대적으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내가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한 문제였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이상함이 확신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잠들기 전,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근데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신나게 웃으며 침대 모서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빨리 재워야 되는데.."라는 생각에 이름을 불렀다. 아이가 돌아보기를 바라며 이름을 20번 넘게 불렀지만, 아이는 여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병원을 예약해 병원을 찾았고 아직 너무 어려 확진은 어렵지만, 자폐스팩트럼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말을 들었다. 발달도 또래보다 전반적으로 많이 느리다는 진단도 함께 따라왔다. 내 아이는 그렇게 2019년 말 자폐진단 1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 삶은 조금씩, 깊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폐스팩트럼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낯선 단어였지만, 이제는 내 삶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단어가 되었다. ABA(응용행동분석), 감각통합, 인지치료, 정발(정상발달), 아스피(아스퍼거증후군)등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어느새 내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결코 쉬는 길은 아니었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아 눈을 가리려고도 했었고, 혼란과 막막함 속에서 방향을 잃었던 시간도 있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어떻게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지 끊임이 고민하며 방황했던 날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에게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내 아이는 나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선물해 주었다. 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더 넓고, 다정하며,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