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한마디가 내게 건넨 위로

내가 정의해야 할 '아이다움'이란

by 김찐따



자폐스팩트럼 아들과 외출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은 늘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뛰거나, 상동행동을 하면, 마치 내 마음이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워진다. 주변 시선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괜스레 미리 신경 쓰인다. 그래서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 오른손은 항상 아이의 왼손을 놓지 않는다.


아들은 단순히 뛰는 정도를 넘어서 이상한 괴성을 지르거나, 감각 추구 행동으로 지나가는 모든 것을 손으로 훑는 습관이 있다. 사람, 벽, 사물 - 그 무엇도 아들의 손길을 거쳐야만 한다. 이 행동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겪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IMG_2355.jpeg 우리는, 늘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최대한 없는 외부에 앉아 밥을 먹는다.


발리에서의 둘째 날, 관광 성수기인 호텔의 아침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부에는 자리가 없었고, 방금 막 먹고 자리가 난 내부 중간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여기서부터 예민도 상승) 그날도 어김없이, 자리에 단 5분도 앉아 있지 않고 방방 뛰어다니는 아들을 나는 쉴세 없이 잡으러 다녔다. 내 앞에 있는, 고작 저 작은 모닝빵을 눈으로만 먹은 채 10번 이상 자리에 앉혀 놓기를 반복했던 때쯤, 결국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음식을 들고 가는 한 외국 여성의 옆을 지나치다가, 뷔페테이블을 지나 그분의 엉덩이까지 손으로 쓱 훑고 지나가고 말았다.

"아뿔싸"


나는 곧바로 허리를 굽히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 아이임을 확인하시더니 방긋 웃으며 "No worries~"라고 말한 뒤 아이에게 친근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아 결국 사건이 일어났구나 자책한 찰나, 우리 뒤편 테이블에 나를 지켜보던 다른 외국인 부부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Can't we just leave him be? He's just a kid."

그냥 아이를 내버려 두면 안 될까요? 아직 어린애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내 어깨에 얹힌 짐이 스르르 내려가는 듯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조그만 실수를 할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쏘아보거나, (그때의 내가 예민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실수를 할까 봐 아이패드라도 보여주면 요즘 부모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선을 늘 특이한 아이네, 또는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으로 받아들여졌고 여러 번 나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날, 외국인의 그 한마디는 마치 내가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위로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자폐스팩트럼 아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 일 뿐이었다. 아이답게 행동하는 것일 뿐, 그것이 잘못일 리 없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발리가 관광지여서 사람들이 이렇게 관대한 걸까? 아니면 내가 그날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서양 사람들의 정서가 원래 그런 걸까? 물론, 아이를 지나치게 자유롭게 둔다는 의견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날, 그들의 관대함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후로도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여러 번 아이에 대한 배려를 받다 보니, 이곳이 나와 아들에게는 어떤 의미로든 '운명'처럼 느껴진 것 같다.(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이다.)


자폐를 떠나서,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아이답게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발리에서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 덕분에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자폐라는 틀을 벗어나, 아이들이 하는 행동 그 자체로 받아 들 일 수 있도록.



그날의 그 작은 한마디는 나와 아들이 함께 가는 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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