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이어 이번 5월 올레 여행은 세 식구가 다 함께 걸었다. 아이가 기숙하고 있는 꿈틀리인생학교의 단기방학에 맞춰 남편은 이미 계획을 짜둔 상태였다.
저렴한 비행기 티켓은 늘 그렇듯 제주행은 늦은 시각, 제주에서 돌아오는 서울행은 이른 시각이라 5박 6일을 3박 4일처럼 다녀왔다. 걸을 수 있는 날이 나흘이었는데 그 마저도 다 걷지 못하고 나흘째 날은 제주시 쪽의 숙소로 이동만 했다. 쌓여가는 피로감에 걸을지 말지 고민을 했는데, 당일 억수 같이 쏟아진 비가 우리의 고민을 정리해주었다. 우산은 하나씩 들고 있었지만, 아래위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흠뻑 젖게 되면서.
걷기 첫째 날은 7코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월평 올레까지 17.6km.
김포에서 비행기 출발이 오후 5시쯤이면 제주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도 공항에서 아주 먼 곳까지 이동하기에 충분하다. 어제, 우리는 오후 5시 출발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해 남쪽 방향으로 공항과 가장 멀리 있는 7코스 근처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출발 스탬프를 찍고 처음 얼마 동안은 도심을 걷는다.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걷기를 잘했다 싶어지는 지점이 7코스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되었다. 차로 다니면 절대 볼 수 없는 지형, 그 속의 물과 풀, 새. 서귀포 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그렇게 걷다가 리본을 따라 길을 꺾어 몇 걸음 걸으니 공원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공원의 이름이 무엇인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다가 금세 집중력이 흐려져 공원 이름은 관심에서 멀어졌고, 결국 이 글을 쓰면서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칠십리 시공원.
올레길과 겹친 공원 안 산책길도 좋고, 시원한 분수가 있는 작은 호수도 좋다. 이 호수를 지나며 긴 징검다리를 발견하시거든 분수의 물이 튀더라도 꼭 끝까지 걸어가 보시길. 그 끝에서 작은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모두를 기다리는 그 즐거움을 눈치채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뿐이어서 그 근처를 벗어나는 내내 돌아보며 안타까워했다.
유명한 외돌개가 있는 공원을 지나면서 오랜만에 걷는 여행에 합류한 아이는 점점 지쳐갔고, 4km쯤 걸었을 즈음 60 빈스라는 카페를 만났다. 우리는 배낭을 풀고 그곳에서 가장 시원해 보이는 음료로 당분을 섭취하고 살짝 졸기도 하며 쉬어주었다. 카페를 나설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강수량이 많지 않다는 예보를 믿고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어 입고 출발했다.
양쪽으로 돌담이 높은 좁은 길도 지나고, 마을 길도 지나고, 바닷길도 지나서 만난 소품샵에서 아이는 친구들 선물을 구입했다.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할 날도 있기에 남편은 짐을 늘이는 건 반대했지만, 언제 또 올레길에서 샵이 만날지 모를 상황이었기 아이는 자신의 배낭에 넣기로 하고 선물을 구입했다. 결국은 여기서의 선물 구입이 탁월했다는 결론.
점심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간 식당은 올레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차려진 테이블은 눈으로 먹어도 될 만큼 화사했다. 전복요리 전문식당 다도. 테이블이 많지 않아 점심 피크 시간에는 대기가 있을 수도 있으나, 눈도 입도 즐겁게 먹고 싶다면 추천한다.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식당으로 들어갈 때는 배가 고파 보이지 않던 작은 마당의 흔들 그네를 보았고, 거기서 식곤증까지 해결했다.
우리는 이 날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느린 걸음을 더욱 느리게 만든 곳은 강정마을이었다. 시위 공간은 사람 없이 비어있었지만, 그곳에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의 한숨은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음악에 힘을 얻어가며 앞으로만 쭉 뻗은 길을 걷고 또 걸어 월평포구를 만난다. 에게? 여기가 포구? 지금껏 제주에서 만난 포구 중 가장 작은 월평포구. 그곳이 종착지인 줄 알았기에 종점 스탬프를 찾아 마을까지 걷는 것은 몇 배로 힘들었다. 그러다 마을 입구에서 선글라스를 쓴 거대한 힙합 돌하르방을 만났고, 몇 걸음 걷지 않아 7코스 완주!
7코스는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거나 발목 보호대 착용을 추천한다. 돌길이 많아서 살짝살짝 발목이 꺾이는 경우가 잦은데 그게 반복되면 발목에 무리가 가는 것이 느껴진다. 올레길을 시작하기 전에 발목 높이가 조금 있는 등산화를 구입해서 길들인 후 올레길에 오르길 추천한다. 앞서 몸을 아껴야 오래오래 잘 걸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