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셋이서 올레길_2
월평에서 대평 올레까지 19.6km.
원래 8코스의 길이는 이러하지만, 우리는 중간 스탬프를 찍고 조금 더 걸어 베릿내오름까지만 걸었다.
제주로 출발하기 전에 아이는 코스 길이를 길게 짧게 잘 선택해서 나흘 내내 걷자며 호기롭게 의견을 냈다. 작년까지 홈스쿨을 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3, 4일은 혼자 쉼 없이 10km 정도는 걷기 운동을 했던 터라, 우리도 아이의 컨디션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의 컨디션이 따라오질 못했고, 둘째 날은 체력을 아꼈다가 셋째 날 다시 한 코스를 제대로 완주해보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처음에 했던 계획이 계속 변경되어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즐겁게 걷는 것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아이와 셋이서 걷는 올레길 둘째 날.
숨을 고르는 날로 정하고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 배낭을 챙겨 근처 스타벅스에서 여유로운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월평 아왜낭목(:아왜나무가 있는 길목) 정류장에서 내려 출발 스탬프를 찍었다.
8코스를 걷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약천사를 만난다. 단일 사찰로는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사찰을 떠올리면 자동 연상하게 되는 우거진 나무 그늘 길은 없다. 다만 바다를 끼고 걷는 바당올레인 8코스 위에 있는 사찰답게 마주한 바다가 시원하다.
약천사에서 이어지는 돌이 많은 바닷길은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날카롭게 살아있는 거대한 현무암을 볼 수 있다. 그런 현무암과 함께 나팔꽃을 닮은 연보라색 꽃들이 펼쳐진 바닷길이다. 자갈밭과 어울리지 않는 여린 꽃의 모양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아침부터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면서 5월에 습한 제주 날씨를 제대로 느끼며 시원한 음료가 간절할 때쯤 카페 바다다(대포포구 근처)를 만났다. 카페의 규모와 음료의 가격이 비례하는 제주 카페들의 추세에 발맞추어 야외 자리까지 제대로 겸비한 카페 바다다의 음료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자주 제주에 내려와 올레길을 걸으면서 비용을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한 우리가 아마도 가장 비싼 음료와 쿠키를 먹은 곳이 아닌가 싶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바다가 보이는 좋은 자리에 앉아 에너지를 섭취하고 다시 등산화 끈을 조였다.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잘 정돈된 길로 이어지고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질 무렵 주상절리가 보이는 해안을 만난다. 그리곤 주상절리대를 관광하기 위해 언젠가 왔던 매표소가 있는 입구를 만나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올레길에서 보는 주상절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볼 때마다 아니 볼수록 신기한 주상절리. 베릿내 오름 입구까지는 흙길이나 돌길 없이 정돈된 길이라 편하다 싶지만 오름 입구의 계단을 마주하면 편한 길을 걸어온 것이 이를 위함이었나 싶어 진다. 8코스의 절반만 걷기로 한 계획에 베릿내오름은 마지막 코스였기에 마지막 힘을 내어 계단을 올라 오름의 둘레길에 들어선다.
기대하지 않아 더욱 감탄하게 했던 둘레길은 비 온 뒤의 개운함을 머금은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거대한 달팽이마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주었다. 달팽이 곁에 한참을 머물다가 겨우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일어섰는데, 맞은편에서 대화하며 걸어오는 커플을 만났다.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달팽이를 보지 못할까 봐 바닥에 달팽이를 조심해 달라는 당부를 건넨 뒤 우리의 종착지인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오름의 둘레길 전체를 돌아내려오는 것이 올레 8코스인데, 우리는 둘레길 중간쯤에서 내려가 다음 숙소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지도 앱으로 겨우 찾아간 버스정류장은 잘못 표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대로 된 정류장을 찾아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오늘 걷기로 한 거리'를 넘어서면 놀랍게도 그 순간부터는 모래사장을 걷는 듯 길이 무거워진다. 어떤 올레 코스보다 힘든 구간이, 걷기로 한 거리에서 추가되는 '올레길이 아닌 구간'이다. 올레길 각 코스의 시작점과 도착점에서 늘 버스정류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올레 여행 tip_
비 오는 5월의 제주에서는 반팔 티셔츠를 기본으로 입는 것을 추천한다. 이른 시간 출발할 때는 반팔 티셔츠 위에 가벼운 긴소매 옷과 바람막이 재킷을 입은 뒤, 날씨와 체온의 변화에 따라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것이 좋다.
제주올레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circle7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