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0코스

아이와 셋이서 올레길_3

by 툇마루

두 번째 올레 여행의 세째날.

둘째날이었던 어제 8코스를 반만 걷는 대신 배낭을 메고 걸었다. 모슬포항 부근으로 숙소를 옮겨 이틀에 걸쳐 10코스와 10-1코스를 걷기 위함이었다. 결론적으론 피로감과 비바람 부는 날씨로 인해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길은 포기해야 했다.




제주올레 10코스.

화순~모슬포 올레, 총 15.6km.

제주올레 리플릿의 소개 문구: 길은 바다로 이어지는데 눈은 산방산과 송악산이 빚어내는 풍광을 따라 걷는 코스. 일제강점기 유적과 제주 4.3 유적지를 지나며 제주의 역사를 만나는 코스이기도 하다.


10코스의 시작점은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종점은 하모 체육공원인데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종점부터 역방향으로 걸었다.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에서 스탬프를 찍고 시작했는데, 안내소에서 시작하는 코스의 경우는 늘 시작하는 기분이 좋다. 안내소에 계시는 분들은 어쩜 그리 편안한 미소를 가지셨는지. 그날의 뜨거운 햇볕과 바람과 비를 같이 걱정해주시고 때로는 화장실 사용을 당부해주시는 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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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8코스를 1/2만 걷고 제대로 잘 쉰 덕분인지, 우리도 아이도 10코스를 비교적 잘 걸어냈다. 남편과 둘이 걸을 때보다 완급 조절에 좀 더 신경 쓰길 잘했다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걸어낼 수 있었던 더 큰 이유는, 단연 10코스에 펼쳐진 그림들때문이었다.

마을길을 2km 남짓 걷다 보면 낯선 이름의 하모해변을 만난다. 유명하지 않은 작은 해변이지만 여전히 제주스럽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준다. 여기가 10코스에서 연이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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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해변


다른 계절의 10코스를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누구라도 5월에 걷는 10코스를 걸어봤다면 자신 있게 추천할 것이다. 글을 쓰는 현재까지 걸은 총 열 개의 코스 중에 남편이 최고로 꼽는 코스이기도 하다. 노랗게 물든 보리밭과 봄에 뿌린 씨앗이 어느새 성큼 자란 초록은 몇 걸음을 못 가서 계속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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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올레길 곳곳에는 다크투어와 겹치는 일부 구간이 있다. 그렇게 첫 번째 겹치는 곳이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를 바로 곁에 두고 지나가진 않지만, 눈여겨보면 올레길 위에서 격납고가 보인다. 농지나 목초지였다는 이곳을 강제로 비행장으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재 이곳은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비행장 부근을 지나 섯알오름 입구 화장실과 쉬어가는 곳이 보이는데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이다. 이곳의 작은 정자에 오르실 때는 꼭 신발을 벗고 오르시길. (관리하시는 분께 크게 혼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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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은 다크투어와 제대로 겹쳐지는 구간이다. 양민학살터, 일본군의 포진지가 있는데, 학살터에서는 차마 카메라를 들 엄두가 나질 않았다. 총살집행 참여자의 진술로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써놓은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려왔다. 아프지만 이런 흔적들이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살아가면서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름을 내려오면 송악산으로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우리는 송악산 둘레길을 이미 두어 번 걸어보았던 터라 곧장 송악산 주차장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 가신다면 송악산 둘레길은 반드시 완주해보시길 추천한다. 송악산 사방 곳곳에서 보이는 광경은 제주 대부분의 것을 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 전체가 관광지이지만, 그중에서도 핫플레이스인 송악산의 근처 식당은 (상차림 대비)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곳에서 갈치 한상차림은 비추다. 더 저렴한 값에 훨씬 맛깔스러운 제주 갈치 한상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10코스의 중간 지점쯤 되는 이곳에서 한 시간 이상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산방산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산방산을 향해 걷는 해안길은 잠시 한눈을 팔다가 고개를 들면 내가 아니라 산방산이 성큼 걸어 다가오는 듯 느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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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을 향해 걷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사계 해변이다. 이리 멋진 곳이 신기하게도 4,5년 전엔 한적하더니 요즘은 부쩍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된 것 같다. 워낙 특별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해안가이다 보니 요즘은 잘 차려입고 사진 찍는 이들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올레길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 에너지도 얼마 남지 않았었는지 그 멋진 사계 해변의 사진이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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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올랐다가, 다시 산방산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이어 그 유명한 원앤온리 카페를 지나 다시 발목에 힘을 주어 걸어야 하는 돌길을 조금 걸으면 썩은다리오름이 나온다. 순방향으로 걸어서 초반에 올랐다면 가뿐한 높이였겠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오름을 넘어 드디어 종착지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을 만났다.

종점 스탬프를 찍고 드디어 10코스 완주!




두 번째 올레 여행의 넷째 날은, 체크아웃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주시 부근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주요 일정이었다. 이동하는 중에 작은 카페에 들러 여행 내내 배낭 속에 있던 책도 꺼내어 읽고 3일간 올레를 걸었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그 이후 숙소까지 두 정거장 정도를 비바람에 맞서 걸으며 머리카락부터 신발 속 양말까지 흠뻑 젖는 특별한 경험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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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을 가다보면 리본이나 화살표가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늦게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이 길이 맞을까,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은 불안감이 살짝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때 여지없이 리본이 떡하니 나타난다. '너 지금 제대로 가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아이와 셋이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반복적으로 내뱉은 말이 리본에 대한 것이었다. "이 리본 만나면 정말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저기 리본! 다행이다.", "아, 리본", "진짜 리본 넘 좋아" 같은.


인생을 걸을때 이런 리본이 나타나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너 지금 제대로 가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리본. 때로는 리본을 미처 보지 못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때에도, 예상치 못했던 그 걸음 또한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거라 믿는다. 언젠가부터 그것이 덜 비장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둘이 걸을 때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을 셋이 걸으면서 하게 되었다. 혼자 걷는 것보다, 둘이 걷는 것보다, 셋이서 함께 걸으니 리본이 더 잘 볼 수 있어서였다보다. 그리고 리본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세배일 수 있어서.




10코스 tip_

곳곳에 식당이나 카페가 많은 코스가 있는가 하면, 10코스는 송악산 근처나 사계 해변 근처에 몰려있다. 10코스를 걸을 때는 미리 쉬어갈 스폿을 정해두고 걷는 것이 좋다.


제주올레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circle7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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