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코스(역방향)

by 툇마루

2022년 5월 29일

1코스: 시흥~광치기 올레/ 15.1km

기온: 18-24℃

옷차림: 나는 긴소매 얇은 스포츠 웨어 한 겹으로 적당했고, 남편은 반 소매 스포츠 웨어 한 겹으로 적당했다.




하루를 시작하며 아름다운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것이란 결코 작지 않은 행운이다. 게다가 1코스 역방향을 선택한 덕에 오전 내내 성산일출봉 곁에서 맴돌 수 있었다. 역방향 출발지에서 멀리 보이던 일출봉이 잠시라도 한 눈을 팔고 고개를 돌리면 눈앞으로 훅 다가와 있었다. 그러다 성산일출봉 입구를 지난 후로는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모습 또한 새로운 웅장함을 보여주어 일고여덟 걸음을 뒷걸음 했다.

성산일출봉은 언제 가도 많은 인파로 쉽지 않은 장소이지만, 언제 봐도 그럴만한 자태를 보여주기에 인정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역시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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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흐림, 비 끊임없이 반복되는 날이었다.

종달리로 가는 길. 올레 걷는 동안 행여 지루할까 열일하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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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좋아하는 동네를 꼽으라면 종달리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라 1코스를 시작하는 마음에 신이 났었다. 그것도 5월의 종달리라니. 하지만 올레길에서 만난 종달리는 반가움은 잠시, 안타까움만 자아낼 뿐이었다. 작은 책방들도 작은 카페들도 그저 다음에 다시 오마 하고 스쳐 지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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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름과 말미오름(두산봉)은 이어져있어서 언제 오름 하나가 끝났는지 다른 오름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다. 여기서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을 처음 경험했는데, 이 비를 맞은 뒤로는 빗 속에 올레를 걷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았다. (물론 강풍이 동반되지 않은 비에 한해서.) 진심 즐겁게 비를 맞으며 걸었다. 많이 내리는 동안은 우산을 펴 들었지만,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머리도 옷도 젖으면 어때!' 단순했지만, 이 생각 하나로 커다란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했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던 편견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은. 덕분에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떠올려보면 올레를 걸으며 비를 맞은 시간들은 선물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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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보지 않은 것과 경험해 본 것의 차이는 크다. 망설여지는 것이 있다면 시도해 보는 쪽으로 선택해 보자. 그 당시,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잠시 비를 맞는 것 같은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사소한 움직임이 예상치 못하게 커져서 되돌아오기도 한다. 걷는 동안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맞았던 경험이 이미 비가 시작된 길도 걸을 수 있게 만든 것처럼. 이것이 확장되어 소심쟁이가 가끔 무모해지기도 하는 것처럼.


1코스를 봄에 걷고, 여름 가을을 지나 이제 겨울의 한가운데서 웅크리고 있다. 지나간 해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었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22년은 자주 그리워질 것 같다. 움직였던 만큼 시도했던 만큼 가벼워진 2022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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