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씻어 엎으며 한쪽면을 기대어 조금이라도 기우뚱하도록 한다. 그릇이 고르게 잘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행동이었는데, 얼마 전 설거지를 하던 중에 꽤나 신경 쓰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기울어져서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생각이 길어졌고 기울어져서 좋은 게 많다는 사실에 왠지 안심이 되었다.
놀이터의 시소가 때에 맞게 기울어야 아이들이 웃고,
처마가 기울어져 있어야 햇빛과 바람과 비를 조절할 수 있고,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덕분에 세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만날 수 있고,
저울은 기울어져야 값을 측정할 수 있다.
평화에 있어서 기울지 않은 중립은 아름답지 않다고 누군가 말했고,
생명을 위해서는 지키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옳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울어진 것들을 생각하다 또 하나 떠올린 건, 고개가 갸우뚱하게 기울어진 모습이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중에. 또는 대화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럴 때면 그 순간의 질문을 잡아 멈춰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처럼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상황에 안타까울 때도 있다.
"갸우뚱".
글자도 소리도 모양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사랑스럽다고 해서 일부러 만들 수 있는 자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영 어색해서 다들 눈치챌 것이다.)
이런 사랑스러운 기울기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대부분 가능하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수업하는 중에도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 중에도 일상생활 중에도,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다른 생각이 있는 상황은 흔히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상황의 흔함과 다르게, 갸우뚱하는 사랑스러운 자세는 흔히 볼 수가 없다. 이해되지 않은 학생과 다른 생각이 있는 팀원이 없을 리가 만무한데 말이다. 긴긴 시간 동안 자신보다 힘이 있는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애써 목에 힘을 주어 기울지 않게 진화된 것일 수도.
진화가 덜 이루어져 갸우뚱을 자주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바람일지는 모르겠으나, 진화가 다시 되풀이된다면 좋겠다. 목에 힘을 덜 주고 갸우뚱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대화 중에, 강의 중에, 회의 중에 그리고 허다한 일상 중에 누군가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사랑스러움으로 바라보자. 게다가 반가운 마음으로 되물어봐 준다면 그 진화는 어렵지 않게 되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