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하지 않는 세상을 그리며.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모습은 어른이든 아이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라도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안 본 눈 삽니다~” 하는 노랫말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상황도 적잖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에 어떠함을 떠나 공공을 대하는 태도이다.
최근까지도 (어떤 이에게는 아직도 여전히) 쩍벌은 여자에 한해서 또는 여자라서 더욱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인식되어 왔다. 부끄럽게도, 나도 3,4년 전까지 딸아이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다리를 모아 앉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주변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라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과거에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 배우고 인식하게 되면서 후회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지만, 자라는 아이에게라든지 대상이 있었던 경우라면 어떻게라도 주워 담을 수 없을지 미안하고 사죄하고 싶어 진다.
평생 단 세 번만 흘려야 하는 남자의 눈물, 담장 밖을 넘지 않아야 하는 여자의 목소리 등과 같은 편견은 사회 전반의 감수성이 성장하는 동시에 그 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유로질 수 있어야 한다. ‘난 남자니까’, ‘난 여자니까’에 묶여 스스로를 옭아매는 데서부터 빚어지는 편견의 힘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스스로의 존중에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상의 세계에서 부동산 거래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릴 현실이 코앞에 놓인 시점에서,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이어지던 성에 대한 관념들이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나마 세대의 이름을 방패 삼아 (세대를 이름 지어 분류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편견을 깨고 “나는 나”, “너는 너”를 드러내는 흐름은 반갑기까지 하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이런 말이 좋은 말인 줄로만 알고 지낸 시절이 있었다. 25년 전쯤인가 핑크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카디건을 사던 날이 기억난다. 그런 색 옷을 사지 않는 편이었는데 매장 직원분이 여성스러움을 돋보이게 해주는 색이라고 해서 선택했다. 소개팅을 며칠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쇼핑을 했던 것 같다. 그 주말에 있을 소개팅에서 나다움보다는 여성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 있고 그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 나를 가두거나 남을 가두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각 개인으로서의 나와 너를 존중하는데 더욱 집중한다면 이런 표현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편견이 진하게 배어있는 말 중에 쉽게 하고 쉽게 듣는 말이 또 하나 있다.
“요즘 ㅇㅇ들”이라는 말.
집 근처에 중학교가 하나 있다. 운전을 하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중학교 하교 시간과 겹칠 때면 자주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요즘 중학생들은 차도를 건널 때마다 저래. 제발 좌우 좀 살피고 건너자, 얘들아!” 차창을 내릴 용기도 못 내면서 구시렁거리 말이다. 그러고는 조금만 기다려주면 될 것을 또다시 아이들을 무리 지어 폄하해 버린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반대로 내가 들을 때도 있다. 주로 지하철에서 듣는데, “애가 얘 하나예요?”라는 질문이 노크도 없이 들어오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쯧쯧...” 하신다. 이미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젊은 엄마들에게 속해지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어른이라서 아이라서, 학생이라서 교사라서, 미혼이라서 기혼이라서, 직장맘이라서 주부라서, 팀장이라서 신입 사원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장애인이라서... 요즘 젊은 엄마라서, 요즘 MZ 세대라서, 요즘 교사라서, 요즘 아르바이트생이라서... 단지 그 어딘가에 속하기 때문에 규정지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떠오르는 편견이 있다면 그것부터 매듭을 풀어보자. 단단히 묶여 있던 것이라도 '한 사람'에 의해 매듭 풀기가 시작된다면, 다음 '한 사람'이 이어지고 또 다음 '한 사람'에게까지 이어져서 언젠가 마지막 '한 사람'의 검지손가락에 크게 힘주지 않아도 스르르 풀릴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애써 경계를 만들지 않아도 세상에 이미 보이지 않은 수많은 경계들이 있다. 어딘가에 속한 사람으로 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바라봐준다면 아름답게 공존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나는 우선 내뱉는 말을 특히 조심하려 한다. 세상을 배워갈수록 ‘이거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워서 세상 어찌 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렇기 때문에 말을 줄이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