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적인 여성, 자립적이지 못한 여성.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늘 자립의 영역에 포함되길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결혼 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이죠.언제부터 어떻게 제게 심긴 생각인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막연한 관념으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건강한 여성상 = 자립적인 여성. 이런 등식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실상은... 품어온 생각과 다르게 남편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 글을 쓰는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인정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라이프 코칭을 받으면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비현실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의존적인 사람임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누구 하나 저에게 "너 옳지 않아"라고 하지 않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현실이겠지요. 만에 하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아주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단지 "너 너무 의존적이야"라는 사람들의 평가가 싫어서 제가 만들어 낸 비현실이었습니다.
그런 비현실을 털어내고나니, '그게 뭐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존적인 사람, 특히 그런 아내입니다. 때로는 남편에게 분리불안까지 느끼는 것도 같습니다.이런 내면을 인정하고 며칠 후, 퇴근하고 씻고 나온 남편에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나, 자기한테 의존적인 사람이야."
남편은 앞뒤 맥락 없는 갑작스러운 저의 자백에 당황스러워보이기도 했지만, '알고 있었는데...? 뜬금없이...?'이런 표정 같기도 했습니다. 당황스럽게 만들어 미안하기도 했지만,내심 아주 후련했습니다.
그 자백이 있었던 날 이후로 농담처럼 '나는 의존적인 아내다~~" 노래를 불렀고, 그럴 때면 남편은 웃으면서 "아, 왜 그래"로 일괄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노래를 들은 남편에게서 상상도 못 했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아내 만나고 사람 됐는데."
'아니, 이 무슨 듣기 좋은 소리?' 싶은 생각과 동시에 깜짝 놀라서 설명을 부탁했더니, 결혼 이후로 공감 능력도 생기고 사람들 사이에 필요한 감수성이 생겼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 이런 설명을 가장한 넘치는 칭찬이라니.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던 나의 자백 뒤로 예상했던 비현실 속엔 비난만 있었을 뿐, 이런 칭찬은 없었습니다.
의존적=나쁨, 자립적=좋음.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물론 자립적인 것이 스스로에게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좋다는 것은 알지요.하지만 가지고 있는 성향과, 살아온 역사, 그리고 맞닥뜨린 상황까지 배제할 수 있는 공식은 인간 세상이 아닌 곳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옳고 그름에서 벗어나,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된듯한 기분마저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성향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 글의 내용을 기준으로 분류 지어 보자면,
자립적인 여성, 의존적인 여성, 자립적인 남성, 의존적인 남성.
어디에 속하든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상황에 따라 다른 성향의 내가 드러날 수도 있겠지요. 의존적이어도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력도 끼칠 수 있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