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툇마루 Nov 09. 2023

얕은 삽질도 좋아!

"엄만 너의 시간을 믿어"

불안.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모가 공통으로 가진 감정 중에 하나이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인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오히려 더 크게 아이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 같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때 그런 불안이 있었다. 내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 네 살 무렵에 경제적으로 무리해 가며 집으로 와서 영어로 놀아주는 선생님까지 붙이기도 했었다. 정확한 계기가 생각나진 않지만, 아이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육아서를 읽어가며 조금씩 만들어간 교육관이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해 본다. '내 아이 이렇게 키워서 명문대 갔어요' 하는 육아서는 거의 보지 않았다. 마음에 대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아이에 대한 불안이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사라졌다. 아이가 보내는 시간을 믿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에 너무 오래 빠져있는 시간만 아니라면) 무얼 하고 있어도 괜찮아졌다. 노래를 부르든 친구랑 통화를 하든 예능 프로그램을 보든 낙서를 하든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생각하다 '삽질에 대한 믿음'으로 정리되었다. 심지어 점점 삽질을 찬양하고 있다.


아이가 홈스쿨링을 하던 시기에는 삽으로 한 곳만 깊이 파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는 것에 집중해서 책을 보거나 찾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었고, 내 방식이었다. 아이는 얕고 넓게, 꼬리를 물고 따라가 보는 성향이라는 것이 조금씩 드러났고, 쉽지 않았지만 나의 삽질 방식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 성향을 인정하고 난 뒤로는 아이가 삽으로 여기저기 얕게 파는 시간에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여러 구덩이를 파는 동안 어깨에도 근육이 붙을 것이고, 그만큼 씨앗을 심을 구덩이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다른 팀에 비해 팀프로젝트 방향이 잡히질 않아서 고민하는 아이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었다. (현재 거꾸로캠퍼스 재학 중.) 팀원들 각자의 삽질을 믿어보자고. 결국 방향을 찾으면 너네가 파놓은 삽질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너 그렇게 해서 뭐 해 먹고살래?"라는 질문이 아이들에게 참 가혹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삽을 고르고 땅을 살피고 땅을 파고 씨앗을 심어 어떤 새싹을 어떻게 틔우는지 재미있게 들여다볼 시기에, 벌써 다 자란 나무를 생각하고 그 나무의 열매를 생각하고 그 열매를 따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참 버거워 보인다. 마음 같아선 이 말의 사용 연령을 법으로 정하고 싶다.

누군가 정해 놓은 틀에서 좀 벗어나면 어때, 너의 속도대로 방향대로 가보는 거야. 똑같은 나이에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무언가를 이루고..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대로 나를 들여다볼 기회를 가진 이후에. 그런 나를 보면서 아이에 대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이는 아이가 가진 힘이 있다. 그것을 믿으면 그 힘이 발휘되는 찰나가 보인다. 믿어주는 만큼 더 자주 보인다. 뭐 해 먹고 살지도 믿자. 우선 부모의 불안부터 잠재우는 것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야, 나 분리불안인가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