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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Dec 28. 2023

아이에게 하지 않는 말

일상 중에도 사소한 의지를 가지고 사는 편이다. 가족에게 사랑 표현을 하는 것이라든지, 물을 사용할 때 아끼는 것이라든지, 가지 않기로 한 매장이 있다든지,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라든지... 주로 세상에 도움이 되고픈 사소한 움직임이다.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이런 사소한 의지 중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하지 않은 말 하나도 포함된다. 

"오늘 말고 다음에 해줄게(또는 사줄게)", "있다가, 좀 있다가", "다음에, 다음번에" 등등. 아이가 떼를 쓰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의미 없는 약속의 말들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마트에서 한 엄마가 떼쓰는 아이에게 "다음에, 다음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본 후부터였던 것 같다. 길 가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도 "다음에 밥 한 번 먹어"라는 빈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 엄마의 말이 다르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저 아이는 엄마가 말한 그 "다음"을 기다리지 않을까, 엄마는 자신이 말한 "다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품 안에서만 꼬물거리던 아이가 자라 의사 표현을 하게 되면서 내게도 동일한 상황이 왔다. 마트나 서점에 가면 아이가 여기저기에 손을 뻗었지만, 가만 보니 그리 간절히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눈에 보이니 즉흥적으로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어른들도 계획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사게 되는 것을, 아이들은 왜 안 그러겠는가. 

그때는 온라인 구매가 원활하지 않았던 시기라 주말에 마트에 가는 일이 잦았다. 최대한 장난감이 있는 코너에 가지 않았지만 근처를 가야 할 때면 단호하게 대했다. 되는 것은 처음부터 되는 것이고, 안 되는 것은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아니 울어재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여전히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커지면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이동하고 나머지 한 명이 간단히 장을 보고 나왔다. 반대로 장난감을 사주기로 한 날에는 마트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네가 말한 ㅇㅇㅇ을 사줄 거야. 하지만 다른 것도 또 사달라고 하면 그건 못 사줘." 단호하고 정확하게 전달했다.


당일에 해주지 못하지만 언젠가 해주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해줄게(사줄게)"라고 말하기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아니까. "다음 주말에 다시 왔을 때는 꼭 사줄게"라든지 "세 밤 자면 택배 아저씨가 가져오실 거야"처럼 구체적으로 말하고 최대한 이 약속을 지켰다. 아이와의 약속을 다른 성인과의 약속만큼 중요하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반복적으로 양육자의 확고함을 보이면 아이도 인식을 하게 된다. '엄마(아빠)가 안된다고 한 건 아무리 울어도 안 되는 거구나', '엄마(아빠)는 약속한 건 꼭 지키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복은 점점 떼쓰지 않는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쉽지 않았지만 "다음에"를 쉽게 내뱉지 않은 나를, 아이가 청소년이 된 지금 스스로 칭찬하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잘했어' 하고.

이렇게 아이와 부모 사이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 아이가 떼쓰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오히려 아이를 대하는 것에 배움이 되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에 대한 존중으로 서서히 이어진 것 같다. 


'이 조그만 아이가 뭘 알아.'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내 생각보다 아이가 조금 더 성숙해 있다고 생각하자. 특히 아동기라면 청소년기로, 청소년기라면 성인으로 생각하고 대하면 아이를 존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은 관계의 바닥을 견고히 다지는 일인 것 같다. 사회에서 타인을 대할 때 한 템포 늦추어 말하는 것이 도움 되듯이 아이에게 말할 때도 한 템포 쉬어가보자. "다음에~"처럼 의미 없는 말이 불쑥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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