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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Jan 04. 2024

아이와 미디어 마주하기

지금 열일곱 살이 된 아이가 뽀로로를 보던 시기가 10년도 더 전이라 이 글이 그새 빠르게 변한 현재에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어느 세대나 아이들을 미디어 앞에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고민인 것 같다.


"바보상자."

이전 세대에서는 아이들이 TV를 그만 좀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TV에 이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덩달아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양육자들로부터 아이가 차라리 TV 프로그램을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다양한 이유였는데, 차분히 앉아서 프로그램 하나를 정속도로 보기 힘들어한다는 경우(1.5배속이나 2배속으로 당겨서 보는 경우), 아무래도 조금은 걸러질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는 경우, 상식이라도 쌓을 수 있는 것 같다는 경우 등이다. (바보상자로 불리던 TV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쾌재를 부를 일이다.) TV보다 더 막강한 바보상자가 아이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늘 손에 붙어있으니 수시로 스마트폰을 깨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이가 뽀로로나 타요를 보던 무렵 우리 집엔 규칙이 있었다.

영상을 "보기 전"에 몇 개를 볼 것인지 정했다.

영상이 시작된 이후에 "이것까지만 보자."는 이미 늦은 타이밍이다. 아이는 이미 영상 속에 들어가 뽀로로와 한창 놀고 있는 중이라 엄마의 말에 집중되지 않는다. 꼭 영상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와 눈을 맞추고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우리 ㅇㅇ이 오늘 뽀로로 이야기 몇 개 볼 거야?"

상황에 맞게 정했지만, 한 번에 10여분짜리 영상 세 개는 넘지 않도록 했다. 가능한 10분짜리 영상을 선택해서 영상이 끝나면 아이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도록 했다. (아이가 스스로 조작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었다.) 다음 영상을 틀어달라는 의미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지만, 잠시라도 아이의 머릿속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가 여러 개 이어지는 영상인 경우라도 이야기 하나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마무리되는 패턴이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제목이 다시 뜨기 때문이다. 보기로 한 만큼의 영상이 끝나면, 양육자가 정확하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이와 영상을 같이 보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와 같이 볼 수 있는 시간에만 영상을 보았다. 파트타임으로 와서 아이를 봐주시는 분께도 힘드시겠지만 영상을 보지 않기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아이와 산책을 하거나 장난감이나 책 가지고 놀아주셨다. (TMI지만 그분은 음치셨는데도 아이에게 노래를 정말 많이 불러주셨는데, 그분과 헤어지고 한참 후 어느 날 아이가 그분과 똑같이 노래를 흥얼거려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와 영상을 같이 보면 간단한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어 좋다. 어린아이와 할 수 있는 대화에 한계가 자주 느껴졌는데 뽀로로는 그런 우리에게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와 영상을 같이 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가 갑자기 뽀로로 얘기를 간단하게 몇 단어로 해도 무슨 말인지 찰떡 같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같이 보지 못한 아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이럴 때마다 늘 어리둥절해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상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단순히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든지, 건널목으로 길을 건너야 한다든지. 그런 면에서 영상이 도움이 되는 면이 있었다.

요즘은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인 세븐틴 영상을 종종 같이 본다. 주로 "고잉 세븐틴"을 보는데 이제는 아이가 없을 때 혼자서도 가끔 찾아서 볼 정도가 되었다. 청소년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을 보면 어떤 점 때문에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듯이(심지어 덩달아 좋아하게 되듯이), 아이가 어릴 때 뽀로로를 같이 보면서 나도 슬슬 재미가 생기기도 했고, 뽀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직 말도 못 하는 손주가 두 손가락을 벌려 화면을 키우고 다시 오므리며 화면을 축소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짧게라도 유아교육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 자랑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대한 늦게, 최대한 짧게 보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화면을 조작하는 놀라운 능력은 최대한 늦게 가질 수 있도록 하자. 태블릿(스마트폰, TV 화면)을 놓는 자리와 아이의 자리를 처음부터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디어를 이용해서 양육자가 휴식을 갖는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최대한 손을 빌려 미디어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참고:

3∼9세 어린이는 하루 평균 4시간 45분 동안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만 3∼4세의 이용 시간은 4시간 8분으로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고기준인 하루 1시간의 4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년 발표)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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