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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Jan 11. 2024

손님에게 보다 내 아이에게 보내는 미소를 더욱 연습하기

아이에게 정도 이상으로 소리를 질러 등교시킨 그날부터였다.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등교하기 전에는 화내지 말자. 기분 좋은 상태로 등교시키자.'

매일 아침 이 다짐을 해야 했다. 급한 엄마와 느긋한 아이와의 등교 전 아침은 매일이 인내력 시험 시간이었다. 등교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잠을 깨는 날도 아이는 방에서 화장실까지 첫 이동에서부터 연착이었다. 어제 자기 전에 읽다만 책이 있으면 더욱 그랬고, 다 읽었다손 치더라도 새로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바로 주저앉아 읽었다. (홈스쿨을 고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막상 홈스쿨을 시작하고 나서 책을 좋아하던 그 아이가 맞나 의심하게 되는 날도 자주 있었지만.) 이 날도 아이는 언제나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느릿느릿 밥을 먹고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그 사이 내 마음도 언제나처럼 화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내려가고 올라왔다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그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아이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감정 변화에 많이 놀라 울기까지 했다. 준비하는 과정을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등교 준비가 얼마만큼 되어가는지 체크하며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눌렀던 감정이 터져 처음부터 소리가 컸던 것이다. 그날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문을 나셨다. 1학년 꼬맹이 등짝을 다 덮고도 남는 책가방이 그날따라 어찌나 커 보이던지.

그렇게 보내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조금만 더 참을걸, 아니 차라리 참지 말고 재촉을 할 걸, 지각하게 놔둘걸(지금이라면 그럴 수 있을 텐데 그땐 나도 초보 학부모였다.)... 여러 가지 후회로 자책하다 보니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흘렀는지 아이가 하교할 시간 성큼 다가와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마중 나가볼까 하고 신발을 신는데, 신발장 거울에 굳은 내 얼굴이 보였다. 이대로 아이를 마주 하고 싶지 않아서 입꼬리를 올려보았는데 이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얼굴이 굳은 채로 시간이 꽤 지난 탓인지 표정이 딱딱하기만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급히 볼 근육을 움직이다 보니 다행히 눈가 근육까지 움직이는 것이 수월해졌다. ('아에이오우' 소리도 내고 그랬던 것 같다.) 입가부터 눈가까지 얼굴 근육이 어느 정도 풀린 즈음에 신기하게도 구겨진 마음까지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어느 정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가 싶을 만큼.


등굣길 중간 어디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학교에서의 시간 동안 아침의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반갑게 달려왔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아침의 일을 넘길만해서 넘긴 것이었는지, 엄마를 만나기 전에 아이도 근육을 움직이며 연습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거울을 보며 연습한 덕분에 웃는 얼굴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고, 아침에 소리 지른 것에 대한 사과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내 사과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한 동안 신발장에 붙은 그 거울은 하교 시간 나의 미소 연습 거울이 되었다. 딱히 좋고 나쁜 일이 없는 날도 가끔 거울을 보며 내 표정을 체크한 후 현관을 열고 나서기도 했다. 연습의 힘이 놀라운 건, 연습을 한만큼 느는 건 노래나 슛 실력만이 아니라 웃음까지도 는다는 것이었다. 진짜 웃음이든 가짜 웃음이든 시작이 어떠했든지 아이와 마주 보고 웃는 시간훨씬 많이 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었다.


집에 오는 손님에게 보다, 밖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보다, 내 아이에게 더욱 진심의 미소가 장착되어야 한다. 엄마 아빠가 세상을 배워가는 통로인 시기에도, 세상을 알아가며 뒤죽박죽 고민이 얽힌 청소년기의 아이에게도. 

지금, 아이가 나를 (엄마를, 아빠를) 떠올린다면 "어떤 표정의 나"를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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