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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Jan 25. 2024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한 가지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3-4억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을 언급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마을도, 3-4억도 쉽지 않은 조건이다. 그렇다면 내 의지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데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질문받는다면, 아이를 키운 17년을 뒤돌아보았을 때 필요했던 것은 "줏대"였다고 답할 것 같다. 다르게 말해 '팔랑귀 닫기' 쯤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조언이나 정보에까지 귀를 닫고 독단적으로 아이를 키우라는 말이 아니다. (아, 그 중도를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니 뱃속에 생기는 순간부터 가족의 상황과 색깔에 맞는 줏대가 필요하다. 외딴섬에 들어가 세상과 동떨어져 살 것이 아니라면, 내 자식을 경쟁적으로 최고로 키우려는 문화에 속해서 살기 위해서는 그렇다.


우리는 신혼시절을 강남 한가운데 원룸 같은 투룸에서 살았다. 당시 나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남편 직장과의 거리를 고려해 집을 구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가 사는 곳이 강남인지 강북인지 크게 피부로 와닿지 않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한 살 두 살 자라면서 이곳이 진정 강남이구나 느꼈다. 우선은 집 근처에 영어 유치원이 아닌 유치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어 유치원이 아닌 한글(?) 유치원은 없는지 묻는 나를 주변 이웃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 영향 때문이었을까. 그때 당장은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아니어서 질문과 답변에서 끝났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영어로 놀아주는 방문 학습을 등록했다. 지금은 아이가 어릴 때 장만했던 그 어마무시한 금액의 전집이 육아필수템이 아니었고, 네 살 아이의 영어 선생님이 필수가 아니었음을 알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수많은 육아서에서의 배움과 팔랑귀로 인한 시행착오가 뒤섞이는 시간을 지나 내 아이에게 맞는 우리만의 줏대가 만들어져 왔다. 팔랑귀가 닫히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서 공든 탑이 결국은 세워졌다. 10여 년을 남편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다투기도 하고 다시 이야기하면서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아이의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불과 1,2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이것에 관해서는 연재 중에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귀가 팔랑이게 만드는 요인은 주변에 널려있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주변 부모들과 사교육 시장에는 물론이고, 드라마나 방송 안에도 심지어 육아서 안에도 널려있다. 팔랑거리는 귀가 나쁜 것은 아니다. 팔랑거리는 중에도 우리 가족에게 맞는 요소를 뽑아낼 수도 있다. 그러다 점점 어느 지점에서는 멈출 줄도 알고, 어느 지점에서는 좀 더 팔랑거려보기도 할 줄도 알게 된다면 점점 줏대가 세워져 간다는 신호일 것이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너무 늦었어요, 어머님"이라는 말로 부모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고 나서 지금이라도 그곳에 왔음이 다행인 듯이 말한다. 앞으로 잘 도와보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말은 들으면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까. (사교육 시장의 모든 곳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법을 활용하는 일부 장사치들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럴 때 그간 세워둔 줏대를 꺼내어 잴 수 있다면 내 아이에게 필요한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 선택의 순간에 줏대가 필요하다. 아이가 외동이면 현실적으로 둘셋보다 조금은 더 풍족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똑같이 두세 개를 사야 하는 것을 하나만 사도 되니 그에 비하면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외동 부모의 숙제이다. 

나의 작은 노하우가 있다면, 내 아이를 생각할 때 내 아이와 더불어 살아갈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내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도 행복해야 함을 애써 떠올린다. 외동아이를 키우며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는 생각이었다. 우리 아이, 동네 아이, 멀리 다른 나라의 아이까지 귀 대신 마음을 팔랑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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