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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Feb 15. 2024

보드게임 어디까지 해봤니?

아이와 함께 한 보드게임 정리

아이 장난감 중에 가장 투자를 많이 한 것이 보드게임이다. 다른 장난감도 그렇겠지만, 보드게임도 만만치 않은 고가의 장난감이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빈틈없는 게임 방식을 만들어낸 아이디어 값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언제나 주문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고민을 거듭한다. 신중하게 구입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지인 집이나 여행 숙소, 보드게임 카페 등에서 경험해 본 후에 우리가 계속할만한 것을 구입하는 것이다. 어떤 게임은 우리 가족이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남편 회사 팀원이 빌려줘서 경험해 보고 구입한 경우도 있다. 

사실 보드게임은 아이의 장난감이라기보다 가족 모두의 장난감이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이가 대여섯 살에 그 연령대에 가능한 보드게임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이와 '놀아 주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보드게임은 우리 부부도 즐길 수 있는 좋은 놀이법이었다. 이제는 아이가 커서 평일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주말이면 설거지 당번을 정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방학이 되면 아이방 베란다에 있던 보드게임들이 하나둘 거실로 나와 쌓인다. 그리고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갈 때는 칫솔을 챙기듯 보드게임을 챙기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은 족히 백 번은 넘게 한 것도 있다. 오래전에 하던 게임을 다시 꺼내어하다 보면 아이가 자란 탓에 또 다른 게임의 재미를 느낄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림 카드를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 <딕싯>이다. 같은 그림 카드지만 십여 년 전의 우리가 만들어 내던 이야기와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이야기의 차이가 느껴져 재미있다. (SNS에 기록을 남겨두었던 덕분에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딕싯 만이 아니라 세월이 오래 묵은 게임들 대부분이 그런 재미를 주는 것 같다. 보드게임이 아주 많은 집과 비교한다면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구입을 멈추고 우려먹기에 우리에겐 충분히 많다.


멤버가 많을수록 게임이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셋이서 하다가 지인 가족과 함께 할 때 한층 재미가 더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렇다고 셋이 하는 게임이 재미없지는 않다. 아니 충분히 재미있다. 다만 세 식구 모두 재미있어할 게임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라도 흥미가 없는 게임은 지속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 우리 가족의 경우 그 대표적인 것이 <부루마불>이었다. (지극히 개인 취향이니 이해해 주시길.) 아이가 초등 저학년 무렵, 남편과 내게도 오래전에 이 게임을 해보았던 추억도 있고 해서 구입했다가 게임을 하는 중에 그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조마조마하게 황금열쇠를 뒤집고 서울 칸을 무사히 지나길 기도하게 되는 이 놀이를 두어 번 이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하게도 아이는 이 게임을 좋아해서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주로 이 게임을 했던 것 같다.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게임이 (이 또한 지극히 개인 취향임을 이해해 주시길) <스플렌더>와 <센츄리>인데 운과 작전이 동시에 필요한 게임이다. 셋 모두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보니 매번 승리의 여신이 이끄는 대로 위너가 바뀌는데 이 또한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한쪽으로 실력이 많이 기울면 게임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건 당연지사. 그렇다고 일부러 져주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이 취학 전부터 했던 게임을 대략 정리해 보면 <젠가, 해적왕 롤렛, 루핑루이, 할리갈리, 스토리 큐브> 정도다. 이 중에 <스토리 큐브>는 주머니에도 들어갈만한 사이즈라 여행 시 이동하는 중에 (차에서도, 기차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자주 사용했다. 주사위처럼 생긴 큐브 아홉 개를 굴려 나오는 그림 모두를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인데, 영 엉뚱한 그림이 끼어있을 때 재미가 더해진다. 스토리 큐브처럼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으로는 <딕싯, 이야기톡>이 있다.)


스피드를 요하는 게임은 <할리갈리, 도블>이 대표적이다. 다음에 어떤 카드가 등장할지 놓치지 않아야 하기에 집중력도 상당히 필요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눈 깜박일 틈 없이 집중을 해야 하다 보니 승부욕이 제대로 자극된다. 실패가 거듭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짜증이 날 수 있으니 주의!


아이가 초등학교 다니면서 사칙연산에 도움이 될까 해서 <로보 77>을 구입했는데, 초등 저학년 때는 계산이 서툴러 흥미가 떨어졌다. 구입 의도와 다르게 초등학생일 때는 베란다에 모셔져 있다가 오히려 계산이 능숙한 청소년이 되고 나서 더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다. 숫자 게임 중에 오히려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루미큐브를 더 어릴 때 흥미 있어했다. 루미큐브는 지금도 우리 집 스테디 게임이다.


<보난자, 마라케시>와 같은 게임은 서둘러 진행해야 하거나 예리한 작전을 짜야하는 긴장감은 덜 하지만, 평소와 다른 성격이 드러나는 게임일 수 있다. 특히 보난자는 거래를 하면서 새롭게 보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체스, 시퀀스, 달무티>는 순발력 있는 작전이 필요한데, 모든 게임이 그러하지만 이 게임들은 특히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이는 게임이다. 시퀀스는 오목과 비슷한 방식이라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달무티는 세 식구로는 안 되는 게임이라 대부분 고이 모셔져 있지만, 집에 지인 가족을 초대하는 날엔 꼭 등장하는 게임이다. 놓칠 수 없는 재미가 있다.


<인생게임, 카탄>은 게임 종류는 아예 다르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게임이다. 인생게임은 부루마불과 비슷하긴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며 가는 인생 루트가 있어 즐길 수 있었다. 카탄은 본인이 속한 땅에서 나는 자원으로 개발을 이어가는 게임인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니 여유 있는 날 하는 것이 좋다. 카탄도 보난자처럼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느낀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이의 성향에만 맞춰 가다 보면 지치기도 하지만 양육자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기도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하자. 좋아하는 목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식사 메뉴를 고르면서, 휴일을 보내면서 가족 구성원의 취향을 고르게 드러내고 조율해서 선택하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취향을 감추다 보면 언젠가 너무 슬퍼질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순서대로 스토리 큐브, 로보 77, 루미큐브, 스플렌더, 시퀀스, 인생게임, 딕싯, 마라케시, 센추리, 체스 그리고 현재 아이방 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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