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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Feb 08. 2024

엄마, 나 못 믿어요?

노크를 하고 아이의 방문을 열었을 때, 때마침 아이가 노트북 창을 바꾸는 중이거나 공부하는 과목을 바꾸는 중일 때가 있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문을 열기 직전까지 엄마의 머릿속엔 눈빛을 반짝이며 열공 중인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띄워져 있었다. 흐뭇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순간 아이의 손이 움직이면 선명하게 떠올렸던 장면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금까지 인강 안 듣고 인스타 하고 있었던 거야?', '방에 들어온 지가 언젠데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거야?' 최대한 눈빛의 흔들림을 들키지 않고 분위기를 파악해보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엄마의 의심 가득한 눈빛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 말하지 않고 간식을 두고 나온다면 성공적이라 있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어설프게나마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참지 못하고 속마음말로 내뱉어버리면 한순간에 분위기는 와장창 무너진다. 아이의 원망 섞인 눈빛과 동시에 억울함이 터져 나온다. "엄마, 나 못 믿어요?!"

때에 따라 나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엄마가 보니까 지금까지 놀고 있었는데 뭘!" 하고 윽박지르거나, '아, 조금만 참아볼걸...' 하고 후회하거나. 후자의 경우라면 그나마 마무리가 지어지지만, 전자의 경우는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아이도 나도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어려워진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자주 일어났던 상황이다.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아이지만,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때 아이는 크게 화를 냈다. 지금이야 그 상황에서 당장 아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려 들면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반드시 사실을 밝히고야 말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열네 살이었던 아이가 실제로 거짓말을 했던 때도, 진실을 말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날은 뒤늦게라도 나와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거짓말이라고 추측하다 못해 확신해 버리고, 아이는 아이대로 억울해서 눈물이 터져 버린 날은 그간 쌓아온 신뢰에 금이 쩍 갈리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든 후자의 경우든 중요한 것은 간식을 핑계로 감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린 것은 어리석은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의 말이 사실이었던 날은 진심 어린 사과가 꼭 필요했다. 사과를 하고 나서도 미안한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이가 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시간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가끔 잘 되고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물어봐 줄 뿐이었다. 


이번 주부터 아이가 고졸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한다. 작년 거꾸로 캠퍼스(현재 재학 중인 대안학교)에서의 첫해는 팀프로젝트와 세 개의 동아리 활동으로 일주일을 꽉 채우더니, 둘째 해인 올해는 검정고시에 도전한단다. 팀프로젝트와 포기할 수 없는 동아리 하나에 검정고시 준비까지 쉽지 않겠지만 본인의 속도로 즐겁게 하리라 믿는다. 나는 다시 아이의 방문 앞에 서서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들고 다른 마음을 가진 마녀가 되지 않기만 하면 될 일이다.



홈스쿨링 시기에 아이를 중졸 검정고시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쓴 글

10화 오늘은 검정고시야! (brunch.co.kr)


홈스쿨 할때의 모습/ 고졸 검정고시 준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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