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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Nov 28. 2024

버거운 첫눈

첫눈이다.

보송보송 새침하게 내리다 아쉽게 스쳐가는 것이 첫눈이고,

누군가는 내가 보지 못했으니 첫눈이 아니라며 우기기도 하는 것이 첫눈이다.

그렇게 내리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것이 첫눈이었다.


올해의 첫눈은 달랐다.

이틀을 내리 내리며 무서우리만큼 무겁게 쌓였다.

아침에 눈을 떠 멀리 창밖을 볼 때는 분명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이었는데, 

막상 집을 나서 보니 힘들게 버티고 선 나무들이 보였다.

아직 붉은 단풍잎에 쌓인 눈이 울적했고, 어떤 나무는 버티기를 포기했다.

월동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면,

계절에 맞추어 잎을 떨굴 수 있었다면,

단풍이 제때 들었다면, 

가을이 제때 와주었다면,

여름이 제때 가주었다면,

지구가 덜 뜨거워졌다면 그 나무는 꺾이지 않았을 텐데...


점점 아래로 휘어지는 나무들을 보며 눈이 그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첫눈이 더 이상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경험이었다.

나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허연 버거움이었다.


너무 이입한 것일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이 나라의 아이들로 보였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나이에 감당해야 할 것들로 눌린 아이들.

충분히 놀면서 자랄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정해놓은 속도대로 가지 않아도 된다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꺾이지 않을 텐데...


나무가 버틸 수 없는 세상이라면

아이가 아이다울 수 없는 사회라면

무엇인들 아름다울까.


눈이 오기 시작하고 이틀째 오후가 되어서야 해가 났다. 

고맙게도 나무 위 쌓인 짐이 녹아내렸다.


해가 뜰 때까지 꺾이지 않고 버텨준 나무들이, 너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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