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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짝꿍의 명절을 위해

by 툇마루

이야기 하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인 A와 B가 있습니다.

명절이 되어 B는 친구 A의 집에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워낙 가깝게 지냈던 터라 서로의 부모님도 뵐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둘은 함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듣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A의 어머니는 B를 주방으로 불러 앞치마를 둘러주십니다. 조리대 앞에 서서 오늘 붙일 전의 종류를 알려주시며 다듬어야 할 재료들을 넘겨주십니다. B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거실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시작한 A도 이런 상황을 당연시 여기는 것 같습니다. B는 호박과 고구마를 씻어 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서너 가지 전이 다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상황이 바뀔 것 같아 보이지 않자 B의 기분은 점점 가라앉습니다. 자신에게 일을 시킨 A의 어머니에게 보다 상황을 그대로 두는 A에게 더욱 화가 났습니다.

A와 B는 서로의 부모님께 명절 인사를 가기로 애초에 약속을 했지만, B는 더 이상 A와 남은 일정을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A는 그런 B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고 호박전을 맛보러 오다가 자신을 향해 눈을 흘기는 B를 발견하고는 당황스러워졌습니다.


B의 기분이 상하기 전에 A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요? 이 이야기의 어느 지점을 수정하면 A와 B 모두 즐거운 기분으로 A의 집에서 나와 B의 집으로 향할 수 있었을까요?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저도 한 번 바꾸어보겠습니다.


이야기 둘,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인 A와 B가 있습니다.

명절이 되어 B는 친구 A의 집에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워낙 가깝게 지냈던 터라 서로의 부모님도 뵐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둘은 함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듣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부모님과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A는 부모님과 B에게 이야기를 나누라며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명절이 되기 전 미리 주문해 두었던 밀키트 세트를 냉장고에서 꺼내었습니다. B는 '나도 갈까?' 하고 눈빛을 보내었지만 A는 데우기만 하면 된다며 바쁜 손으로 앉아있으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B는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실제로 간단한 과정만으로 요리가 가능한 밀키트들이 있었지만 가짓수가 많아 식사 때를 넘길 것 같았습니다. B는 기꺼운 마음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A를 도왔습니다. 30분 만에 그럴싸한 식탁이 마련되었습니다.

A는 B에게 고마워했고, B는 A를 도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A의 집에서 나온 A와 B는 사이좋게 걸음을 맞춰 B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B의 집에서는 A가 B를 기꺼운 마음으로 돕는 풍경이 당연스럽게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명절에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의 상황을 두 친구의 이야기로 짧게 만들어보았습니다.
저는 다른 'K-며느리'들에 비하면 명절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나마 이번 명절은 특별히 스트레스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려 명절 연휴를 되짚어보다 여러 상황에서 비슷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번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였는데, 제가 주방에 있는 장면이 나오면 어김없이 남편도 주방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양가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주방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위 이야기에서처럼 저희는 이번에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이 가능한 주방보다는 거실에 계시도록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며느리들이 명절을 힘들어할 상황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만 아내의 기분을 살피라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부모님 댁에서 마음이 편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불편한 사람을 위해 좀 더 움직이고 좀 더 살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좋은 날에 집으로 돌아오는 짝꿍의 기분이 가볍다면 자신의 기분도 덩달아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A도 B도 서로 더 수고했다고 토닥여주며 명절 연휴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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