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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버린 독서의 계절

잘 읽고,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

by 툇마루

신기하게도 숫자상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면 어김없이 아침저녁 부는 바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매해 그런 변화가 신기한데 그 무렵 나의 독서 패턴도 덩달아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평소보다 책에 집중하게 된다.

9월에 들어서기 직전부터 지난 한 3주간 맛나게 책을 흡입했다. 이 기세를 몰아붙여볼 요량으로 도서관엘 갔다. 읽는 속도가 느려 평소에는 한두 권씩만 빌렸는데 그날은 무리해서 네 권을 빌려왔다. 대출 기간 연장 없이 모두 읽고 곧 다시 대출하러 오리라! 하는 조금은 넘치는 텐션이 있었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여러 일정이 겹쳐 사나흘 책을 놓게 되면서 그 흐름이 끊어져 버렸다. 그 흐름이 꽤나 큰 아쉬움인 이유는, 사실 내게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한 달여가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을인 10월이 되면 어김없이 집중력도 떨어지고 책도 내 손에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책에 제대로 재미를 붙이고 읽기 시작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아서 아직 책과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듯 싶다. 이 흐름을 놓치면 언제 다시 나만의 독서의 계절이 찾아와 줄지 알 수가 없다. 잘 읽히지 않을 때의 나의 독서는 선선한 바람 속에서 책을 펼쳐도 서너 페이지를 못 넘기고 졸기 일쑤다. 그래서 같은 페이지 같은 줄 위로 몇 번이나 지나가는지.


마흔 즈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서 이제 10여 년이 넘어가지만, 3-4년 전쯤부터 제대로 책을 즐기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글쓰기의 영향이었다. 읽다 보니 잘 읽히는 작가가 생기기 시작했고, 호감이 가는 문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러워지고 닮아가고 싶은 만큼 나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책 읽는 시간이 즐겁게 더 늘어났다.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래 글을 쓰는 것보다 읽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글쓰기 실력은 쓰는 만큼 는다고 하고 그 말에 완벽하게 동감이지만, 읽는 만큼 느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끔은 방금 읽은 책의 말투가 내가 쓰고 있는 글에서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경험도 한다. 그럴 때면 어머나! 하고 화들짝 놀라기보다는 모방하면서 느끼는 특별한 즐거움도 느껴진다. 그러면서 점점 나만의 '투'도 언젠가 생기면 좋겠다고 은근 바라본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다 보니 잘 읽히는 시기에 더 많이 읽지 못하고 흐름을 놓쳐버린 것에 꽤나 미련이 남는다. 미련이 남아 다시 책을 펴고 질척거려 본다. 아직 한참 남은 가을이 언젠가 내게도 독서의 계절이 되어주기를, 내 의지만 있다면 어느 때라도 독서의 계절로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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