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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y 22. 2024

조금 색다른 오마카세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어릴 적 먹던 소시지에 눈이 간다. 길고 긴 분홍색 소시지. 어른이 되면 작게 보일 것 같았는데 여전히 팔 길이 만한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 일렁이다 옛 기억이 떠올라 서글픔도 출렁였다.    


"엄마, 이 소지시 지겨워. 이번엔 햄 사줘."

"안 돼. 다섯 식구 전부 배불리 먹으려면 햄은 너무 작아."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슈퍼에 갔던 날, 처음으로 반찬 투정을 했다. 덩치 큰 소시지 옆엔 줄줄이 비엔나 같은 햄들이 나를 유혹했다.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이번 한 번만 햄 사주면 안 돼?"

"햇살아, 햄은 건강에 안 좋아. 대신 소시지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

     

'치! 친구는 매일 햄 먹는다던데.'

뾰로통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 너무 추운 겨울이라 두 뺨이 소지지같이 붉어졌다. 그날 저녁, 둥그런 밥상 위에 동글동글 분홍 소시지가 놓였다. 평소와 달리 계란물을 듬뿍 입은 소시지.

"엄마, 얘네들도 겨울이라 두껍운 옷 입었네?"

나무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방과 마당이 바로 연결된 우리 집.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날만큼 우풍이 심했다. 너무 추워 소시지도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말에 가족들 모두 깔깔 웃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다섯 식구가 함께 밥을 먹으며 웃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또 가출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을 나가방안엔 늘 보자기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나를 위해 누나가 차려 둔 점심 밥상. 밥상도 나처럼 혼자 남겨진 같아 외로워 보였다.

'얼마 전까지 가족 모두 동그랗게 앉아 밥을 먹었는데...'

밥상 위에 보자기 덮인 모습이, 뜨뜻한 밥과 반찬이 식어서 뚜껑에 남아 있던 자잘한 물방울이, 이불을 덮고 엉엉 울던 나를 닮은 것 같아 서러웠다. 보자기 위엔 늘 누나가 남긴 쪽지가 보였다.

'밥 굶지 말고 꼭 먹어'

울면서도 씩씩하게 밥을 먹었다.

'햄 사 달라 조르지 말고, 그냥 엄마가 차려 주는 대로 맛있게 먹을걸. 그럼 엄마도 집에 있지 않았을까?'

여섯 살 꼬마였던 나는 더 이상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열 살이던 어느 날, 그날도 엄마는 집에 없었다.

"형, 먹을 게 김치 밖에 없어"

밥 솥 안에 밥은 가득한데 반찬이 없었다. 형이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 봐. 내가 김치 볶아 줄게"

형은 자기 얼굴보다 두 배나 커 보이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리곤 활짝 핀 연탄불 위에 올려 두었다.

열세 살 어린이였던 형. 좀 더 어린 동생에게 처음 만들어 주는 요리. '치익~!' 김치가 볶아지는 소리에 괜히 마음이 설렜다.

"햇살아, 맛있지?"

"응"

기름을 잔뜩 먹은 엉성한 김치 볶음이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어떻게 만들어졌더라도 난 분명 맛있게 먹었을 테다. 늘 혼자였던 수많은 날들, 함께 먹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스무 살. 고시 공부하던 형의 간식을 챙겼다.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던 형.

"먼저 자지. 피곤하게  기다렸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먼저 잠들지 못했다. 늦은 밤, 모든 방에 불이 꺼져 있으면 형의 마음까지 어두워질 것 같았다.


 매일 다른 걸 만들어야 간식이라 할 텐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 라면만 끓였다. '김치라면, 어묵라면, 만두라면, 소고기라면' 나는 냉장고에 남아 있던 재료로 다양한 라면을 끓였다. 맛있게 먹던 형이 말했다.

"동생이 아니라 엄마 같네."

"형도 김치 볶음 만들어 줄 때 엄마 같았어."

엄마 같다라? 갑자기 코가 시큰해졌다. 필요할 땐 늘 자리를 비우다가 세상을 등졌던 엄마. 오랫동안 비어 있던 엄마의 자리. 그래서 선명하게 알았다. 엄마의 사랑은 크고 화려한 게 아니라 그저 머물러 주고 지켜주는 마음이라는 걸.




 스물 다섯 되던 해,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던 누나가 결혼을 했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남은 집. 가족들의 밥상은 부엌을 가장 많이 출입했던 나의 몫이었다. 반찬이야 시장에서 사면되지만 국 없이 밥을 잘 못 먹는 아버지 때문에 '국 식단'이 필요했다. 월요일 된장찌개, 화요일 김치찌개, 수요일 콩나물국.. 그럴싸한 식단을 짰지만 내가 끓인 국은 짜거나 싱거웠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뜨거운 여름에도 '아따, 시원타'라며 국을 들이켰다.


 매일 국을 끓이니 애써 감춘 마음들이 보였다. 공부하랴, 직장 다니랴 바빴을 텐데 '오늘은 또 뭘 준비하지?' 늘 고민했을 누나 마음,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든든한 밥 한 끼가 간절했을 텐데 국맛이, 반찬이 별로여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던 아버지 마음, 서글프고 힘들어도 티 내지 않던 그런 마음은 분명 반찬 투정하지 않는 내 마음과 같았을 테지.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햄을 잔뜩 샀다. 어린 시절 원 없이 먹어 보지 못해서인지 아직도 햄을 좋아한다. '오늘은 뭘 해 먹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오던 길, 아파트 담장에 활짝 핀 장미꽃이 보였다. '장미는 쉽게 쓰러질 수 있어 담장에 기대어 피는 꽃'이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담장이 눈에 들어와 물끄러미 바라 보니 어린 시절 밥상들이 둥실  올랐다.


 굶지 말라 차려 둔 누나의 밥상. 김치 볶음 한 가지만 놓인 형의 밥상. 그 밥상에 기대어 다시 라면을, 국을 끓여 낸 나의 밥상. 우리의 밥상은 주문할 음식을 주방장에게 위임하는 오마카세. 먹고 싶을 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걸 알기에 주방장이 차린 대로 먹던 조금은 서러운, 색다른 오마카세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차린 밥상은 언제나 든든했다. 밥상으로 연결된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장미를 받치는 담장처럼 기댈 수 있었으니까.


 만들고 먹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오마카세는 어떤 맛일까. 언젠가 우리 가족 모두 오마카세를 함께 먹으며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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