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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y 15. 2024

뉴욕에서 핫도그 파는 전직 외교관

"동사무소 같은 행정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친구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조사하던 순간 얼떨결에 이 질문에 손을 들고 말았다.  딴생각을 하다 엉뚱한 항목에 응답을 했던 것이다. 약 20여 년 후, 어릴 적 장래 희망조사처럼 나는 취업 시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엉겁결에 공무원이 되었다.


 10여 년 가까이 근무한 공무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먹고사니즘만 보고 택한 직업이라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내게 직장 동료나 어른들은 말했다.

"이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 있어?"

"야, 네가 선택한 거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거야. 누가 공무원 하라고 강요했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현실적이고 냉정한 평가도 받아들여하는 걸 안다. 하지만 마음은  거부했다.

'이 세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적을 것 아닐까?.'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거야. 여유 없는 사람에겐 선택할 자유도 없거든!'   


 답답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공상에 빠졌다.

'만약 핀란드나 덴마크에서 태어났더라면 나도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해서 살았을 거야.'

 핀란드와 덴마크엔 자신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핀란드는 '미 앤 마이 시티'라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가상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 기업이나 자영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덴마크는 '청소년 진로 지도 센터'를 운영하여 초등학생 때부터 만 24세까지 학생들의 진로를 책임지고 있다. 왠지 이런 과정을 거쳐 직업을 택하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곧 체념하곤 한다.

'그래! 이런 나라들이라고 좋은 것만 있겠어?'


 혼란스러움을 겨우 붙잡고 살다가 몇 해전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또 일렁였다.         

"내가 아는 사람이 외교관 하다가 마흔에 뉴욕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한대."            

듣는 순간 충격이었다. '아니 왜? 번듯한 직업을 그만두고 핫도그를?'

당황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그 외교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핫도그가 생각났다고 한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맛있게 먹던,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들었던 핫도그'가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말이다.




 나도 자꾸 생각나는 핫도그 같은 기억이 있을까. 생각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 보았다.  


# 초등학교 일기 

"샬레(접시) 위에 싹이 튼 강낭콩을 화분에 옮겨 심고 물을 주었다. 마른 잎이 눈물 흘리 듯 많은 물을 주었으니 금방 자랄 것 같았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추석은 빨갛게 익어가는 감처럼 천천히 돌아왔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의 일부다. 어릴 적 쓰던 글엔 '마른 잎이 눈물 흘린다' '손꼽아 기다렸지만 천천히 돌아왔다'는 표현처럼 슬픔이 스며 있었다. 자주 집을 비웠던 엄마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글에 남았던  같다.


 잘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서러움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인 선생님들은 글을 잘 썼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래! 백일장 같은 대회에서 장려상 정도는 받던 아이였다.

'글 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아니야. 초등학교 때 상 한번 안 받아 본 아이가 어디 있겠어?'

왔다 갔다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일'로 결론을 내렸다. 아직도 어릴 때 썼던 글을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게 그 방증일 수 있으니.   


# 대학교 그리고 소개팅

 꽤 모범적인 대학생활을 했기에 대학 생활 동안 내 필기 노트는 인기를 끌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여러 명이 복사해서 돌려 봤다. 모두 본인 노트가 아니었던 탓에 "오빠(형), 이거 무슨 말이에요?"라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었다.

"와! 설명 정말 잘한다. 귀에 쏙쏙 들어와."

만족스러운 듯한 주변 반응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해서 내가 설명을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겠지.'


"말씀 재밌게 잘하시네요. 강의 듣는 줄 몰랐어요."

소개팅을 하면 어색한 분위가 싫어 내가 먼저 분위기를 띄우는 편이다. 상대방은 대부분 강의를 듣는 것처럼 내가 재밌다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 물론 '투머치 토커(수다쟁이)'처럼 보여 소개팅 결과는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언제부터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지?'

 자꾸 주변에서 말을 잘한다 하니까 난 말 하는 게 재밌어졌다

학창 시절 내 생활 기록부는 '내성적이다.' 또는 '과묵하다.'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의 나는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말이 없을 때도 많다. 뭐가 맞는 걸까. 어른이 된 지금의 내 모습이 맞겠지. 사람은 계속 변하는 존재니까.




 과거의 흔적을 더듬으며 나는 마흔 살이 되어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았다. 이젠 누군가 "좋아하는 일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글쓰기와 가르치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면 상대가 재차 묻는다.

"그럼 힘들지 않고 즐기면서 하겠네요."  


즐기면서라? 좋아하는 일이란 뭘. 예전엔 가슴 뛰거나 하고 싶어 안 달 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콩닥콩닥 설레거나 즐기는 마음은 일시적이다. 반복해서 지겹기도 하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는데 다시 하게 되는 일. 그게 좋아하는 일이다. 내겐 글 쓰는 일이 그렇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접신이라도 한 듯 잘 써지다가 안 써지는 날은 '내 길이 아닌가?' 좌절한다. 그럼에도 늘 가던 카페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쓰려고 다시 노트북을 .


"나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고민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보라고 이야기해 준다. 좋아하는 일 찾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우린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갖기 위해 죽어라 공부만 해왔다. '나'를 제대로 돌아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흘러간 과거에서 반짝이던 내 모습을 찾아보자. 좋아하는 일은 바로 거기 숨어 있을지 모른다. 너무 늦게 찾으면 어떻게 하냐고? 기억하자. 전직 외교관도 핫도그를 팔기 위해 마흔 살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의지는 언제나 시간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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