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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y 08. 2024

웃고 또 웃어 주는 마음

 '수학: 수(數)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학문'


 학창 시절, 수학을 새롭게 정의할 정도로 수학이라는 과목을 싫어했다. 그땐 미처 몰랐다. 훗날 수학 점수를 올리기 위해 내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공부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고3 수능시험을 망치고 '전문대학 가서 취직하라'는 집안의 의견을 무시하고 재수를 했다.(삼수까지 할 줄 진즉 알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특별한 꿈이나 공부에 소질이 있던 것도 아니고 집안 사정마저 어려운 상황임에도 재수를 선택한 이유는 지나치게 유치했다. 그저 친구들처럼 4년제 대학에 가고 싶었다. 너도 나도 4년제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 전문대학을 택하는 건 '낙오자'가 되는 길처럼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누군가를 따라가면 성공할 것 같은 길과 나 홀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실패할 것 같은 길만 존재하는 걸까. 선택은 자유라는 말이 정말 맞 한 걸까.




 예견된 일이었지만 재수의 길은 험난했다. 밥값은 늘 모자랐고, 학원비로 쓸 수 있는 돈은 매월 5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과목 선택은 비교적 수월했다. 잘하는 과목은 없고, 못하는 과목은 뚜렷한 상황이니 그냥 수학만 수강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까?'  

부족한 돈 때문에 수업 선택은 괜히 신중했다. '최다 수강생', '전 클래스 조기 마감'라 떠드는 광고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잘하고픈 내 간절함만큼이나 진심 담은 수업을 듣고 싶었다. 고민하던 찰나, '00 고교 전직 교사'라는 단순하지만 진솔해 보이는 광고가 눈에 띄어 k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했다.


 낡고 긴 의자에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 예비 고교생들 틈에 끼어 첫 수업을 듣던 날, K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과 내일, 일주일 뒤, 한 달 뒤에도 계속 반복하면 수학도 잘할 수 있어요."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격려에도 등받이 없는 의자에 허리를 곧추 세워 수업을 듣던 불편함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번도 수학을 잘해 본 기억이 없었으니 나는 매일매일 불안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걱정 가득한 마음 가득 싣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뒷좌석에 앉아 자주 창밖을 봐라 봤다. 느릿느릿 넘어가는 해가 어둠을  몰고 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수험 생활도 어두운 결말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시컴매진 내 마음과 달리 저녁을 해결하려고 들르 도서관 앞 분식점은 조명도, 아주머니도 밝았다.


"학생 어서 와요. 오늘은 뭐 줄까요?"

엄마 미소를 지으며 뭘 먹을지 물어보는 아주머니를 마주하면 가득했던 불안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없는 돈 더 아껴 보려고 국물로 허기짐을 채울 수 있는 라면이나 어묵을 먹고 있으면 사장님은 서비스라며 튀김이나 꼬치를 건넸다.

"이건 내가 개발한 돈가스 튀김이고, 이건 떡꼬치예요. 공부하느라 힘들텐데 든든하게 먹어요. 하하."

 평 남짓한 작고 허름한 분식점이었지만 넉넉하게 건네는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는 크고 넉넉다.

"딸! 엄마 걱정 마. 엄마는 서툴고 엉성해도 잘하고 있어. 하하."

음식을 먹다가 우연히 딸과 통화하는 사장님의 전화를 듣게 되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분식점은 처음 해 보시는 건가요?"

"원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술을 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분식점을 시작했죠. 손재주가 있으니 음식도 잘할 것 같고 해서.. 음식 맛있지 않아요? 하하."

 아주머니의 너털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도서관이 끝나는 시간, 닫힌 분식점엔 매일 작은 빛이 새어 나왔다. '뭐지?' 싶어 다음날 아주머니께 물었다.

"도서관 마칠 때 보면 분식점에 불이 켜져 있던데 뭐예요?"

"아 그거요? 새로운 메뉴 연습하느라 켜져 있는 불이랍니다. 하하."    

언제나 '하하' 웃음 지으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던 아주머니. 그런 아주머니를 보며 알게 되었다. 가려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야 하는 불안함. 그런 마음 앉고서 때론 뭔가를 배우며 웃는 얼굴로 살아 가는 게 어른이라는 걸 말이다. 그날 이후 수학 공부의 불안감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으니 아주머니 보단 불안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답보 상태에 있던 내 수학 성적은 더운 여름이 돼서야 아주머니의 신 메뉴인 '냉라면'처럼 속 시원하게 뛰어올랐다. 5등급 성적이 2등급이 되었을 만큼. 그래서 재수(삼수)는 성공이었냐 물으면? '아니요'다. 수학 말고 문제가 많았던 성적이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으니 실패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재수생 시절을 '실패 같은 성공'으로 기억하고 있다. 혼자만의 정신승리? 아니다. '살아지는' 삶 속에서도 웃고 '살아가는' 어른의 마음을 배웠다. 기억하지도, 써먹지도 못하는 수학 공식보다 인생의 교훈 하나 배운 게 더 값진 것 아닐까.     




 취업과 대인관계 실패에 방문을 걸어 잠근 은둔(고립) 청년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재수하던 청년 시절의 축 쳐진 내 모습이 떠 올라 왠지 마음이 짠했다. 좋은 대학 입학, 대기업 입사처럼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고, 실패하면 누칼협('누가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같은 비야냥 섞인 반응을 보이는 현실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자신의 길이 아니어도 너그러운 웃음 짓던 아주머니, 그런 모습을 보고 따라 웃고, 마음을 다잡던 내 모습이 그리운 요즘이다. 때론 원하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할 만큼 우리 삶은 고달프다. 비난보다는 웃고, 또 웃어주며 배우는 마음이 영글었으면 좋겠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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