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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Apr 24. 2024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한 공부

 '이차 함수의 그래프가 어쩌고 저쩌고 일 때 X값과 Y값을 구하시오.'

인생의 정답도 모르겠는데 X값, Y값은 왜 구해야 하며, 그래프엔 굴곡이 있는데 내 삶은 왜 하강만 있을까? 학창 시절,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혼자만의 개똥철학을 생각할 만큼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학교 다니기 전엔 세 자릿수 덧셈까지 잘하던 놈이 어쩌다 이리됐지?"   

형이 공부를 못하던 내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늘 하던 말이었다. '그래!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엄마가 집 나가간 후 마음을 잡지 못했던 걸까? 학교 수업이 맞지 않았던 걸까? 원인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나는 '학습 부진아'였다는 사실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겐 중간, 기말고사 후 늘 예정된 위기가 찾아온다.

'성적표에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 올 것'  

나는 혼나는 게 두려워 아버지 몰래 책상 서랍을 열어 도장을 찍었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조차 흐려지고 있던 중학교 2학년,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열려 있던 아버지의 책상 서랍이 열쇠로 잠겨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초조해하고 있던 차 같은 반 친구 A가 다가왔다.

"무슨 걱정 있어?"

"아.. 그게"       

사정을 말하자 A가 말했다.

"부모님께 당당하게 성적표 보여 드리고 칭찬까지 받도록 해결해 줄게. 일단 학교 마치고 우리 집에 가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A는 컴퓨터를 켰다. '성적표'라는 파일 이름을 클릭하니 맙소사! 성적표와 같은 똑같은 문서가 눈앞에 나타났다.

"몇 등으로 해줄까?"

잠깐 멈칫했지만 우선 살고 보자 싶어 원하는 점수와 등수를 말했다. A는 줄 간격, 접히는 부분까지 원본과 똑같은 성적표를 만들어 냈다.   

'이 자식아! 이런 가짜 성적표 만들 정성으로 공부하면 너도 모범생이겠다' 말하고 싶었지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어찌 나무라겠는가.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께 가짜 성적표를 보여 드린 후 도장을 받아 진짜 성적표에 날인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밤잠을 설쳤다. 성적표에 찍힌 도장이 '거짓말쟁이 범죄자'라는 표식 같았다. 그 후 다시는 A에게 성적표를 의뢰(?) 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어떻게든 공부시켜 보겠다고 형이 내게 숙제를 냈다. 잘해보자 싶어 호기롭게 문제집을 펼쳤지만 기초가 없다 보니 푸는 문제마다 너무 괴로웠다. 나는 그냥 답안지를 베껴 답을 적은 후 맞다고 채점해 뒀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다'라고 떳떳 척한 말한 것과 달리 문제집은 너무 깨끗했다. 이상하게 여긴 형이 말했다.

"야, 이 문제 한번 풀어봐"

맞다고 표시한 문제를 머뭇거리자 화난 형이 말했다.      

"이 자식아, 공부를 안 했다고 할 것이지 거짓말을 해!"

문제집으로 형에게 얼굴을 맞고 코피가 났다. 엉엉 울었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그동안 남몰래 성적표에 도장을 찍던 행위와 성적표를 위조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죽을 생각이었어."     

공부라면 일가견이 있던 형이 행정고시에 최종 합격 후 했던 말이다. 굉장히 충격이었다. 만년 열등생이던 나와 달리 형은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물론 우리 집은 학원에 보낼 형편도 아니었다.) 전교 10등 안에 들던 우등생이었다. 공부라면 신처럼 보이던 형이었기에 고시 공부도 어려움이 없이 합격할 것 같았다. 그런 형이 죽을 각오로 공부했다니 믿기지 않아 재차 물었다.

"거짓말이지?"

"진짜야.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무겁게 공부했어"

예상치 못한 대답이 또 한 번 가슴을 쿵 때리며 치열하게 공부하던 형의 모습이 떠 올랐다. 


"수학 성적이 좀 안 좋네. 이미 늦었지만 열심히 해 봐"

고등학교 입학 당시 일시적으로 성적이 주춤했던 형에게 격려 아닌 좌절에 가까운 말을 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우등생이었던 터라 자존심에 금이라도 갔던 걸까. 형은 여름방학 2주간 하루 15시간씩 수학 공부에 매달려 다음 학기에 자기 실력을 되찾았다.       


"이거 너무 적게 뽑는 거 아니야? 합격하기 어려울 것 같아 부담되겠다."

생각보다 적은 행정고시 채용인원을 본 나의 반응에 형이 말했다.

"야! 채용 인원 생각하지 말고 1등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해야지."   

그런 각오 때문인지 형은 길게 5년 걸린다는 고시를 3년 만에 합격했다.


 형이 공부를 잘했던 이유는 '투쟁심'이나 '냉정함'때문이었다. 이면엔 '무겁게 공부했다'는 말처럼 묵직한 책임감도 있었다. 하지만 쇳덩이 같던 부담을 안고 공부해서 부작용이라도 생긴 걸까. 형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종종 마음이 다.

"그러길래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했어야지!"

텅 빈 마음 채워 줄  격려의 한 마디가 필요했는데 형은 내가 취업을 못해 전전긍긍할 때, 모은 돈 없이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상처 주는 말을 했다. '나도 공부 잘하고 싶었다 뭐!' 따지려다 그냥 넘겼다. 누구나 자신의 방법으로 성공하면 그게 유일한 정답인 듯 말하기 쉽고, 형 혼자 짊어졌던 책임감을 나눠가지지 못한 미안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학습 부진아였던 나는 어른이 서야 열심히 공부한다. 물론 국영수 같은 학교 공부가 아니다. 글쓰기, 사람 공부 등 삶을 위한 공부를 다. 세상은 넓고 해야 할 공부는 많다. 이젠 앞서거나 성과에 주목하기보다  마음을 채우는 공부를 하고 싶다. 투쟁심과 냉정함을 가진 형처럼 서늘하게 공부하되 형 같이 서늘한 사람에게 한 움큼 따뜻함을 불어넣는 공부 말이다. 경제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게'하는 공부랄까. 부지런히 공부해서 인생 부진아는 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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