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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y 29. 2024

서류광탈에 애플로 간 지방대생

평가의 잣대

 프랑스 대학생에게 킬러 문항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어느 교수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프랑스 학생은 스무 살이 넘도록 객관식 시험이 뭔지 몰랐다. 의대, 공대 등 일부를 제외하고 프랑스는 객관식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칼럼을 읽다가 엉뚱한 가정을 해 보았다.

 '나도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우등생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객관식 시험과 잘 맞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늘 초조함느꼈다. 시험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교 성적은 형편 없었고, 수능, 입사 시험 결과도 좋지 않았. 그래서인지 '인생에 정답은 없다'라는 명언이 싫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선 늘 정답 찾는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하우리 사회에 통용될 수 없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 일엔 울었지만 글 쓰고 말하는 일엔 웃었다. 서술형 위주의 대학 공부는 잘 맞았고, 직장도 문서 위주로 일하는 곳이라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다.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지 뭐!'라며 그냥 기고 싶지만 객관식 시험으로만 평가받았던 지난 시간을 떠 올리면 아직도 서늘한 서글픔이 밀려온다.




 "실버타운을 만들어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고, 어쩌고 저쩌고 해야 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이라는 주제로 치러진 A대학 면접시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면접을 보던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수능 점수는 몇 점인가요?"

블라인드 면접이었는데 점수를 물어서 당황했다. 머뭇거리다 말했다.

"00점입니다."  

 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교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직후 '수고했어요'라는 말로 면접은 끝났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왈칵 눈물이 흘렀다. '면접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는데..' 낡은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이 살던 동네에서 자랐기에 어르신들의 허기진 마음이 뭔지 알았다. 그런 그늘진 마음 헤아리며 정성스레 했던 대답이 수능 점수로만 평가받는 것 같아 억울했다.   

     

 결국 A 대학에 떨어지고 B대학에 입학했다. 글 쓰는 대부분인 학교 수업. 친구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 하는  싫어했지만 나는 글 쓰는 공부가 흥미로웠다. 객관식 문제 풀이처럼 쫓기는 느낌이 고, 구도만 잘 잡으면 거침없이 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생각이 뚜렷하고 분명하다'며 내가 쓴 답안을 칭찬해 주기도 했다. 내 생각, 내 삶을 존중받는 것 같아 뿌듯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박람회에 참가했던 어느 날, C백화점 인사 담당자가 말했다.

"우리 기업은 스펙보다 열정을 봅니다. 토익점수 같은 건 최소 기준만 넘으면 돼요."

열정이라는 말을 듣고 '해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용 상담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우연히 인사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번 1차 필터링 기준이 어떻게 되지?"

"졸업 후 6개월 지난 사람, 지방대생, 토익점수 900 미만입니다.'   

앞에선 열정을 논하고 뒤에선 철저히 스펙을 따지다니!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지방대생이니 엑셀에서 필터링될 운명이었다. 또다시 객관식 점수로만 평가받는 것 같아 억울했다.


그날 저녁, 답답한 마음에 학교 선배와 술을 마셨다.

"선배! 우리가 무슨 공산품이에요? 그놈의 스펙! 스펙! 지긋지긋하네요. 정말! "

"나도 답답해. 입사 원서를 200군데나 넣었는데 그냥 광탈(광속탈락)이야."

우리는 취업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얼큰하게 취한 선배가 말했다.

"우리가 지방대생인지 모르는 곳으로 가자! 난 해외로 가련다."

"떠난다고요? 난 용기가 없어요."

너무 서글픈 마음에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우니까 선배도 따라 울었다. 남자 둘이서 술 먹다가 울음을 터트리니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우리는 울고 싶은 만큼 펑펑 울었다.


 취업 시장에서 예정된(?) 서류 광탈을 경험한 후 나는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 선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취업에 도전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한 1년쯤 지났을까. '애플'에 입사했다는 선배의 소식이 들려왔다. 깜짝 놀랐다. 술자리에서 그냥 흘린 말이라 여겼는데 진짜 해외로 갈 줄이야! 내심 선배의 용기가 부러웠다. 훗날 선배가 애플사에 취업할 수 있었던 이유를 . '애플 사용 후기, 개선할 점, 입사 후 만들고 싶은 제품..' 오랜시간 생각하고, 또 고민하며 남긴 기록들. 그런 흔적들로 선배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이다.




 누가 더 적합한 사람인지 평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과 역량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객관식 평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순 없다. 효과적인 평가 도구라 해도 삶의 발자취가 점수로 필터링 될만큼 우리 삶은 쉽고, 가볍지 않다. 성취만큼 중요한 건 '존중'이다. 수백번 서류 광탈을 경험한 선배가 합격이 담보되지 않은 채 미국로 간 이유는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는 애플의 진정성 때문이었다. 꼭 주관식이 아니어도 좋으니 우리 사회도 이젠 평가의 잣대가 좀 다양해졌으면 한다. 객관식 점수가 인생 점수라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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