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신이 나를 유리유리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잘 깨지는 것 같다고. 깨진 조각들을 담아 잘 간직하는 유형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래서 소설가가 되게 한 것 같다고. 상처의 원형을 잘 기억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기민해진 촉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게 하고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세상의 일을 무디게 넘기려면 좋으련만, 나의 마음은 깨지기 쉽고 또한 무르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는, 나는, 소설을 쓸 수 없을 테니까.
계절에 피어오르는 것들을 바라보며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겉은 굳건하게, 안은 비워놓아야지, 생각한다. 나를 내보이기 위해 세상에 전진한다기보다, 내 글이 누구의 마음으로, 생각으로 들어가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새기며 글을 쓴다. 이 세상에 깃든, 하나의 작고 사소한 빛이 누군가에게 뜻밖의 위로가 되듯 나의 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나간다.
가끔 소설을 쓰고 있다 보면, 내 마음의 일부를 소설의 인물들에게 상당히 뺏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속사정을 잘 살피면서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온전히 마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 하나 두루 다스리는 일이 좀 소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마음을 두느라, 내 마음은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소설이 진전되지 않을 때는 반사적으로 어떤 글이든 쓰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나의 관점을 담은 글, 자기 욕망적 글쓰기에 대한 욕구다. 그런데 이미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들을 헤아리느라 지쳐 어떤 글도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소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에너지와 체력을 소진시키는 노동이다.
그럴 때, 어떤 목소리가 마음 한 편에 찾아든다. 지쳐 엎드려 있는 내게 어서 일어나서 글을 써야지, 이렇게 마음이 시키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활자로 남겨야 한다며 잔소리를 하는 마음의 소리들이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정말 문득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쓰고 싶은 마음이 나를 평온하게 한다. 그러면 이제 아무 말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또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은데 표현하는 바를 다 담아내지 못할 때, 그건 고통이 된다. 그래도 좋은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고통의 허리를 밟고 올라서서 움트는 희망들이 글의 활자와 문자 안에 있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글, 그렇게 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비로소 나 자신을 살려나가는 것 같다.
오늘도 글을 쓰고, 어제 쓴 글을 만지작거린다. 소설 속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느라 달뜨고 민감한 마음들이 지쳐가기도 한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때로는 잔소리꾼으로 변해서 나타나는 그 마음을. 그 마음으로 세상을 그리고, 더불어 나의 내면을 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