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자유로운 운동’에는 정해둔 방정식이란 없다. 자유라는 것은 운동을 통해 우리 자신을 죽을 때까지 계속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달해야 할 점도, 소요 시간도, 그래프 형태도 ‘자유’와는 관계가 없다. 나의 글쓰기도 어떤 기록이나 목표와 상관없이 그러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막상 그렇지 않다. 일종의 끝나지 않는 배구 경기의 랠리같다고 할까.
마침 요즘의 낙은 여자배구다.
김연경이 속한 흥국생명이 현재까지는 절대 강자고 강팀을 추격하는 다른 팀들과의 경쟁이 재미 포인트다. 그리고 여기에 각 팀이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도입한 외인 선수 선발 전략이 적확했는지, 팀의 전략을 지켜보는 재미도 좋고.
오늘은 흥국생명과 IBK 기업은행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나는 기업은행을 응원하고, 황민경 선수의 팬이다. 공격수치고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지만 민첩하고 영리한 플레이를 보는 게 좋다. 잦은 부상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황민경 선수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뻗어있는 기운도 단번에 일으켜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마지막 5세트, 두 팀의 접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해설자가 말한다.
“랠리(상대편의 공을 받아내며 때리고 받아내고 때리는 난타전을 주고받는 것)에 미쳐야 해요.”
“랠리예요?”
진행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네, 어차피 누구도 이기기 쉽지 않잖아요. 오늘 이 게임은요, 잘 받아내는 팀이 승리하는 거예요.”
어쨌든 받아내는 팀이 승리하는 거라고.
오늘 편집자님과 원고 수정에 대한 얘기를 길게 주고받았고, 논의가 길었어도, 나는 그가 좋은 편집자라는 것을 알기에 수긍한다. 원고를 깊이 읽고, 방향성을 모색해 주는. 하지만 어제 악몽을 꾸었던 게 기억이 났고, 그 사이 놓인 한숨. 언제쯤이면 마무리될까.
그러나 끝은 없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길고 ㅠㅠ)
랠리를 벌이며 어떻게든 하루하루의 미션을 받아내는 것이다.
언젠가 끝난다 생각하는 것보다, 끝나지 않을 랠리에서 어떻게든 잘 받아내는 마음으로 원고를 대하면, 그건 좀 편안해지는 일일까. 여하튼 배구는 나에게 이런저런 고민과 일들에서 잠시 관심을 뺏어주는 고마운 존재.
자유의 글쓰기라면 패터슨을 빼놓을 수 없다.
패터슨 시의 패터슨이 꼭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의 일상에서 불러일으켜지는 사적이고 사소한 영감들이 넘쳐올 때의 순간들에 대한 감흥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쓰는 행위로 존재하는 삶, 그리고 쓰는 것으로서 그려지는 일상들. 일상에 무감한 일들로 가득한 이 평범한 도시, 패터슨에, 패터슨이 살고 있다. 패터슨은 언제나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다. 버스 안에서 펜과 노트를 놓지 않고, 매일 그리고, 언제든 글을 쓴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과 한계를 토로하는 동료의 말이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 그는 어김없이 버스 운전석에 앉아 시를 쓴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건 일상이다.
나 역시도, 패터슨처럼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쓰는 사람에 가깝지 못할까 봐도 그렇다. 쓰는 것에서 멀어질까 봐 그렇다. 쓰는 사람에 가까워 있지 못할 때는, 삶의 여백을 분주하게 뭔가로 쌓아놓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리고, 사라지는.
글을 쓰고 나면 그것은 가끔 내게 어떤 여백을 만든다. 여백을 잃을까 봐, 글을 써가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채울수록, 채울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는 것 같다. 글에서 멀어질 때면, 버스에 앉아, 벤치에 앉아 펜을 손에 쥔 패터슨이 떠오른다. 사각거리며 써가는 종이 위의 질감이 떠오르고, 나도 그 언어들을 따라 내가 지었던 음절들의 유의미성에 대해 생각한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이 좋은 건, 생각나는 건, 나도 그처럼 일상 속에서 글을 놓지 않고 계속 써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단순히 쓴다는 것만으로도, 그 평범함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