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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기성 Nov 26. 2024

가보지 않은 길



때로 마음의 시련은 기대로부터 비롯된다. 기대했던 바로부터 좌절하고 나면 차라리 다른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이 뒤따르기도 한다. 실망하거나 좌초하지 않기 위해 되도록 미래의 일에 기대를 걸지 않은 채 마음을 반으로 접어놓고 사는 건 좋은 일일까. 하지만 접어 닫아 놓은 마음으로 뭔가를 새롭게 담을 수 있을까.      


고래로 자기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불안 자체가 숙명이었다. 인간의 진화 맥락도 생존의 불안을 극복해 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포식자를 구별해 피하고 먹이를 용이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한 행동 방식이 직립보행을 하고 목을 길게 만들었다. 두뇌는 작아졌으며 불완전하게 태어난 아이는 유형성숙을 통해 성장하면서 협력과 생존 방식을 학습해 갔다. 인간은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은 버리고 생존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기능은 확장시키는 선택적 진화를 해왔다. 바꿔 말하면 단 한 번도 인간은 생존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불안이 인간을 행동케 하고 진화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불안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생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선택적으로 진화한 방식은 먹이가 우연히 잡히기를 기다리거나 어떤 적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기 위해 숨어 지내는 게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고 도구를 만들어 싸워나가는 방식이었다. 어느 안전한 한자리에 머물며 생존을 기대하고 기다림을 갖는 것은 되려 생존에 저해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생존에 대한 불안은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뜻했던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의 흘려보내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인간의 삶은 유한하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의미를 달리 표현하면 짧은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빛을 다음 생애에서라도 되갚으라는 뜻은 아닐까. 아니면 한 생애에서 다하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도를 다시 한번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아닐까. 그만큼 인간의 인생은 짧다. 이 지구상에 있는 시간 동안 그 순간조차도, 우리가 숨을 끊기 전까지도 원하는 것을 다 이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 생애에서는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생존에 있어 필요한 것은 어떤 길을 택하거나, 어떤 행동이나 선택이 유리할 거라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예언, 막연한 기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불안 그 자체 일수도 있다. 타인의 조언이나 도움을 받아, 혹은 스스로 안전한 길을 택해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불안 앞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적 진화를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기회를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것일까.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온전히 그 길에 투신하지는 못했었다. 언제나 글을, 소설을 쓰기를 원했지만 정작 소설가로서의 삶은 낯설고,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매일 어떤 글이든 쓰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원했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쓰기를 중요한 취미나 일상 속 해묵은 감정을 해갈해 주는 차원으로 여기기는 했지만, 나는 그 길로 온전히 걸어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소설가가 아닌 채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기에 반대편 방향의 낯선 길을 마주 바라보는 게 문득 더 생경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가끔 단편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하곤 했다. 일상 속에서 그것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서 매년 응모하는 것은 어려웠고 해를 걸러 참여해 보곤 하는 식이었다. 어느 해에는 모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었는데, 그곳에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는 작가였던 김형경 선생님이 심사를 맡아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소설보다 마음, 심리에 관한 글을 많이 더 많이 쓰시지만, 그때의 나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같은 그분의 글과 소설들을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신춘문예를 응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놀랍게도, 김형경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된다. 광화문 언저리에서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떨리는 마음과 가쁜 숨을 진정시키느라 꽤 애를 써야 했다.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를 눈앞에서 본다는 게 신기한 일이기도 했고, 또 신춘문예에 마침 공모를 한 뒤여서 그런지 선생님과의 만남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때 나는 일종의 감정적 과잉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아직 신춘문예 당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물론 그 해 그 신문사 신춘문예의 심사도 김형경 선생님이 맡아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미 다른 심사위원으로 바뀌었을지도 몰랐고. 하지만 아니라면, 선생님이 예년과 마찬가지로 그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다면, 내가 응모한 소설을 심사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혹시 내 글을 눈여겨본 선생님이 소설을 본심에 올렸고……  정말이지 당선이라도 된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당사자를 선생님이 직접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 그런 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선생님을 만나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직접 선생님을 뵈었을 땐 정말이지 벅찬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역시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심 나는 내가 응모한 소설의 결과에 대해 선생님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하며 한참을 망설인 끝에, 선생님을 만나기 전 했던 상상을 다시 떠올리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제가 얼마 전 OO 신문사 신춘문예 소설 부분에 응모를 했거든요, 선생님…….”

“그래요?”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는 듯 되묻는다. 역시 괜한 질문을 한 건가 싶었는데 선생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 올해 심사를 제가 봤는데.”

선생님이 너무 스스럼없이 본인이 심사를 봤다는 사실을 밝혀 나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 한편, 옳다구나 싶었다. 운명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었다.

“소설 제목이 뭐였어요?”

예기치 않게 선생님이 내 소설의 제목을 먼저 물어봐주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느린 길 위의 집이라는 제목인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이 웃으며 일갈한다.

“그거 제가 떨어뜨린 소설이에요.”

“……네?”

“제목이 기억나요. 제가 떨어뜨렸어요.”

순간 나는 아주 높은 곳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아래로 맥없이 하강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 했던 상상과 그려보았던 미래가 전복되고 허물어지고 있는 걸 느꼈다. 내가 오래 꾸었던 꿈마저 같이. 그러면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설에도 일종의 형식이 필요한 거예요. 다른 소설이나 소설가를 연상케 하는 요소는 좋지 않고요. 제목이 느린 길 위의 집이라고 했죠? 응모한 소설의 제목도 이혜경 소설가의 길 위의 집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했고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자기만의 소설을 써야 하는 거예요.”

그때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보려 애썼지만 얼얼하게 얼어붙은 나의 기색을 선생님은 눈치채셨을까. 선생님은 그날 내게 저녁까지 사주셨다. 마음 한편에 훅 저미어 오는 실망감이 나를 뒤흔들었지만 선생님을 그저 한 자리에서 뵙고 있다는 게 다만 위로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 문을 열고 나서자 선생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그래요? 축하해요.” 아는 지인분이 한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당선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축하를 건네는 선생님의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선생님과 나 사이는 불과 한 걸음 차이였지만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쳐진 것 같았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있는 선생님, 그리고 그 세계로 진입한 사람들. 나는 그 세계에 닿을 수 없는 걸까, 하는 비애가 잠시 찾아들었다.      


선생님과 헤어져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느꼈던 부끄러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했던 문학의 길이었지만 그 길을 향해 스스로를 온전히 내던지지 못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해서였을까. 그저 약간의 발을 걸친 채 우연한 결과를 바라며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그런 부끄러움이었다.      


그 해로부터 몇 해를 지나면서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일상을 헤쳐 나가는 일은 영화 속에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앞뒤에서 다가오는 벽 같았다. 제때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대로 압사하고 말 것 같은 벽. 그러다 문득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더는 더는 그 길을 회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었나. 이대로 머물다간 결국 원하는 일을 해내지 못한 채 인생을 흘려보내고, 이번은 아니더라도 다음 생애 정도에서 이루면 된다며 습관적으로 자조하면서 늙어가다 결국 꿈을……  그렇게 놓아버리게 될까 싶었다.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두려웠던 그 길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막연한 불안과 걱정 속에서 직감하게 된 것이었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원하는 소설과 문학의 길을 온몸으로 껴안았음에도 앞으로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며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때로 차갑고 좁게 느껴진다. 이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대답은 어렵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그 길이 나를 불러들인 거라고. 그 호명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관념만을 품고만 살았겠지. 하지만 비록 차갑고 좁은 길이지만 그 길 한가운데서 바닥을 걷고 때론 만져보며 길의 질감을 감각한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원했던 길로 가는 것을 적어도 다음 생애에 넘기지는 않았다고. 다만 그것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때 김형경 선생님을 만나고 소설가가 되기까지 이어진 일들이 다 그 수많은 신호였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그 길로 불러들인 반짝임이었다고. 그렇게 세상의 존재들이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한편, 그 사실에서 어떤 온기를 느낀다. 내가 가는 그 길이 비록 비좁고 울퉁불퉁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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