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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기성 Dec 24. 2024

지금 어디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마포중앙도서관(마중도) 5층 집필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쓰고 있는 소설이 좀처럼 나아가지 않아 심란하고 갑갑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몸을 뒤틀어 움직여 보기도 하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도 있지만 아아 어떡하다 이 지경이 되었지,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다. 이럴 때는 책상에서 잠시 멀어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소설을 쓰며 가끔 신기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지금처럼 내가 완전히 비어 있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또 어느 순간엔 내 안에 가득 쓸거리가 채워져 있는 걸 발견할 때가 그렇다. 그럴 때는 옅은 조바심마저 느끼며 글을 써나가게 된다. 저장되지 않은 파일처럼 내 안의 것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마음을 안고. 못처럼 박아 고정해 두고 싶지만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소설에 대한 상념들 같다. 게다가 이렇게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바닥이 보일 때는 여지없이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만다. 다시 나를 채우고 글쓰기 앞으로 데려다 놓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잠시간의 환기가 필요하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나는 층계참을 찬찬히 오르락내리락하거나 각 층의 자료 열람실을 슬렁슬렁 걸어 다닌다. 책들이 빼곡한 서가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쩐지 책에 파묻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세기와 밀도가 달라지는 빛이 서가를 감싸는 모습에서 어떤 안온함을 느끼기도 한다.      


마중도 자료 열람실 책상에는 칸막이가 없다. 서가 벽면을 따라 앉는 자리에도, 중앙의 개방형 책상에도 경계는 없다. 오로지 무엇인가를 보거나 읽는 사람들이 경계 없이 한 공간에서 머무르거나 오가고 있다. 고개를 파묻고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 동영상 강의를 보고 있는 사람, 뭔가를 같이 보고 있는 연인들, 꾸벅꾸벅 졸며 손으로 괸 턱을 자꾸 미끄러트리는 사람,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학생들 속을 가만가만 걸어 다니면 나도 그 안의 풍경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책 냄새, 책을 꽂고 빼는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학생들 사이 배어 나오는 작은 웃음이 내 곁을 서성인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내 안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글을 쓸까. 가끔 그런 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주변의 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어디에서 글을 쓰는지 묻곤 한다. 어떤 작가는 독서실이나 칸막이가 있는 스터디 카페처럼 아예 꽉 막힌 밀폐된 공간을 선호한다고 했다. 자신의 공간을 한정 지어야만 몰입이 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였다. 반면, 스타벅스나 카페처럼 열린 공간을 선호하는 이들도 역시 많았다. 대체로 집이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게 중에는 집에 아무리 좋은 책상과 의자, 전자 기기, 키보드를 들여놓아도 작업에 집중이 되지 않아 밖으로 나가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나도 한 번쯤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고급스러운 아이템들이 많이 보여 부러워하던 차였는데 글은 그곳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니, 놀라운 마음이 들수밖에. 


또 어떤 작가는 카페의 번잡스러움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속에 있다 보면 창작열에 불꽃이 인다고 했다.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마련해 놓고 공유 작업실로 사용하거나 클래스를 열어 글쓰기 강의를 하는 곳으로 사용한다는 작가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작업을 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럽고 복잡다단한 순간 속에 놓여 있어야만 ‘머리가 트인다’는 이도 있었다. 특정 데시벨에 이르면 그건 아예 무소음과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하는 걸까.      


나의 경우에는 카페보다는 조금 더 조용한 공간을 선호한다. 카페에서는 아무래도 주위 소음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주위 사람들의 대화에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되는 탓이다. 얼마 전에는 카페 바로 앞자리에서 누군가 창밖으로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옥상에 빨래를 널고 왔는데 어떡하냐며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빨래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당사자도 아닌 다름 아닌 내가, 초조해하며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미 집중력을 도둑맞고 말았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사용해도 되지만, 오래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아서 그런 날이면 소음으로부터 아예 탈출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카페에서는 그렇게 자주 흐름이 깨지는 통에 가급적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 집에서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때로는 너무 관습적인 공간이어서 글이 써지지 않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긴장 없이 너무 쉽게 글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소음에서 자유로운 공간을 찾게 되는데, 작가 레지던시가 그런 대안이 되어준 것 같다. 일정 기간 입주해 작업에 열중할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연희문학창작촌, 호텔 프린스 같은 곳에서 집필실을 배정받아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좋은 점이라면 이곳에서 어떤 것이든 생산해서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굳건해진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조용하고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가끔 외로움이 밀려오는 정도다.      


그런 장소에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낯선 주변 산책을 하거나 심심이 소요하다 다시 돌아온다. 주위의 것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걷다 보면, 내가 글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지 않았는지 신기하게 알게 된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 별 수 없이 뭐라도 쓰게 된다. 배정된 집필실에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게 왠지 직무를 유기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 설핏 찾아들어서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런 공간에서는 오직 혼자다. 글을 쓸 자유도 글을 쓰지 않을 자유도 있다. 한편에 놓인 침대가 언제든 내가 눕기를 환영하고 나는 시시때때로 그곳에 눕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하지만 금세 어떤 목소리가 슬며시 내 귓가에서 속삭인다. 여긴 쓰는 곳이라고, 하는 목소리가. 그렇지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이 공간이 내가 쓰는 나라는 걸 끊임없이 직면하게 하는 장소라는 걸 알게 된다. 적어도 글은 나보다 더 좋은 존재여야 하니까 풀어진 모습으로 써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겠냐는 또 다른 내 안의 목소리가 한쪽 구석에 몸을 널브러뜨리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쩔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써나가는 거다.      


                                                                                     *     


마포중앙도서관도 작가들에게 집필실을 내어주는 곳이다. 이곳 집필실은 긴 책상 위에 스탠드 등이 놓여 있는 조촐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이다. 쓺과 휴식을 함께 주는 공간이지만, 쓰다 말고 자주 누워 있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몸을 뉘인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금슬금 귓가에 찾아오는 목소리가 들린다. ‘넌 여기 글을 쓰기 위해 온 거라고.’ 성가신 목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약간의 죄책감이 찾아오는 것만 빼면, 집필실은 괜찮은 곳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 필요한 건 특정한 장소라기보다 글을 쓰는 데 있어 필요한 에너지를 한데 모으게 해주는 곳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곳이 사람들의 소음으로 번잡하거나 이동하는 지하철이거나 카페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어디에서든 고요한 마음으로 글을 써갈 수 있다면 그곳만큼 좋은 장소는 없는 게 아닐까.

      

오늘도 글을 쓰며 낯익은 투쟁을 반복한다. 소설을 써나간다는 건 다른 삶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글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진실이기 위해서는 조금도 허투루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 금세 흐트러지는 마음.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의 고요를 찾아간다. 어쩌면 삶 속에서 글을 이어 써간다는 건  한쪽 다리를 들고 평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그저 나에게는 평형을 이룰 한 평의 고요한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열람실 책상에서 책과 노트북에 파묻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본다. 그들도 나처럼 뭔가와 싸우고 있겠지. 내게 찾아와 한참을 웅성거리던 소리가 멈추더니 이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도 이제 자리로 돌아가.'      


나는 몸을 돌려 층계로 향한다. 어두운 생각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나는 어느새 집필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되살아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이야기 속의 그들이, 

그들이 지금 내게 달려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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