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by 조민성

현관문이 열린다.


오랜만에 소파에 누워 평화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낯선 사람이 신발을 신은 채로 집안에 들어온다. 슬그머니.


낯선 이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시고 손도 씻더니 이내 집에 가져갈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저기요. 누구세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은 나는 가까스로 가장 상식적인 질문부터 했는데 화들짝 놀라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이 다시 한번 나를 충격에 빠뜨린다.


"응? 그쪽은 누구세요?"




낯선이 들.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숲이 그리 친절한 호스트는 아니다.



단순히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체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며 가끔은 정신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을 주기도 하는 등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형을 골라 찾아다니다 마주치는 특이한 불청객들이 있는데 바로 사람과 야생동물들이다.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대부분 겹치는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 기가 막히게 슬며시 들어와 있다.

- 울타리를 넘어온다. (전기울타리도)

- 계절마다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온다.

- 나를 보기 전까지는 굉장히 행복해 보인다.

- 마주치면 되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 부르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 몇 번 반복하면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 몇 달 뒤 또 온다.



마지막 부분이 제일 싫다.


- 또 온다.




- 사람 편.


결국 일이 아주 바쁘지 않은 날은 꼭 숲을 한 바퀴 돌아보며 불청객들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이 일을 몇 달만 게을리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여기 가까이 살아서 원래 나물이랑 버섯 캐러 오는데?"



마실 나온 것 치고는 복장도 장비도 대차게 갖춘 불청객의 말이 참 당당하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산 아래 동네 사람들이나 프로 약초꾼들은 내가 있을 때만 들어와 의사를 물어본 후 떠나기 전에 사례 비슷한 수확물을 나눠주고 간다.


"여기 주인 바뀐 건 모르셨어요?"


-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데?


"아 여기 주인이 원래 원 씨 아니었나?"


- 홍 씨였답니다.


숲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는데(말이 필요 없는 공간이라) 큰 개들을 데리고 다니면 이런 사람들과 길게 얘기할 일이 적어져서 참 좋다.


그렇게 그냥 쫓겨나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드는지 간혹 안 나가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만 좀 캐고 가면 안될까요?"


이 정도는 귀엽고,


"인심 참 팍팍하네요."


되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유지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간 것은 형법 제319조의 주거침입죄에 해당되어 징역 3년 이하, 벌금 5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사유지 내에서 무단으로 채취하는 것은 형법 제329조 절도죄에 해당되어 징역 6년 이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냥 보내줄 때 조용히 나가면 되는데 참 피곤하게 한다.

어릴 때 많이 혼나면서 자랐을 것 같다.




- 야생동물 편.


여기서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 숲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라니와 사슴, 멧돼지, 다람쥐, 뱀, 삵, 족제비, 꿩 그리고 간혹 가다 유기견인지 들개인지 모를 견생들인데 대개 한 번씩은 마주치게 되고 어느 운수 좋은 날은 이것들을 하루 동안에 다 만나는 날도 있다.



'고라니와의 간단한 일상 회화', '하루 15분 멧돼지 언어' 같은 책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결국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건 수렵에 관한 책 밖에 없었다.


그나마 사람이랑은 길지 않은 대화라도 할 수 있는데 야생동물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 도망가기 바쁘거나 흔적만 발견한다.



숲이 유지되는 데에는 야생동물들의 역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애써 쫓아낼 필요도 없을뿐더러 차라리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에 도토리가 수북하게 쌓여도 그냥 먹고 가라고 내버려 둔다.


재밌는 건 지난겨울 그렇게 내 농장으로 멧돼지들이 모여든 덕에 수렵꾼들의 사냥터가 농장 주변으로 형성되어 겨울 동안 꽃 심는 내내 총소리를 들어야 했다.


포수 아저씨들에게 물어보니 농장 주변이 포인트 자리라고, 꽃 농장이니 길로만 다니라고 이미 서로서로 다 전달됐다고, 나도 전달받았다.


한국의 경우 우산종(넓은 구역과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절하는 포식자)이라고 할만한 호랑이, 곰 등의 맹수가 없다 보니 먹이사슬의 빈자리를 인간이 꾸역꾸역 채워나가는 걸 보면 재밌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호랑이 마주치는 것보다 말이 통하는 포수 아저씨들을 마주치는 게 인사도 할 수 있고 좋다.


안 그러면 나도 개체 조절당했을 테니까.





- 말이 통하실 거라 믿는 침입자 분들께.


멧돼지 항상 있어요. 키우거든요.


여름에 계곡에서 뱀 나와요.


가을에 말벌 나와요.


겨울에 갔다가 재수 없으면 사냥개한테 뜯기고 총 맞아요.


봄에 저 잘못 만나면 진짜 콩밥 먹어요.


집 안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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