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by 조민성

통나무를 번쩍 들어 올리자 조카들이 환호한다.


내친김에 더 큰 통나무도 들어 올리자 숲은 우리끼리 열광의 도가니다.


자기들보다 큰 개가 삼촌 말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저 높은 곳에 달린 열매가 삼촌 손에 쉽게 딸려오는 것도, 손짓 몇 번이면 이내 삼촌 손에 들려있는 꽃다발도 모든 게 신기하다.



"엄마, 엄마, 삼촌 봤어?!"


이 아사리판을 한쪽에서 지켜보던 누나는 딸들에게 능숙한 미소로 답해줬다.


"민성이 삼촌 진짜 짱이야! 나무 들었어!"


"삼촌 원래 힘세."


"엄마 엄마 나도 저거 껍질 벗길래."


"삼촌한테 해도 되냐고 물어봐봐."





"할만해?"


애들이 내 연장으로 통나무 껍질을 벗기는 동안 누나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누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제법 능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하는 거지 뭐."


"몸은 괜찮아?"


"아직까진 쓸 수 있어."


마지막 대답에 고모가 혀를 끌끌 찬다.



아버지의 유일한 여동생.

생전의 아버지를 닮은 외모와 말투, 특유의 강인함.


가끔 고모가 아버지가 썼던 단어들을 똑같은 딕션으로 뱉을 때면 어릴 때 잘못하고 혼나던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러니까 그게 뭐고?"


"뭐가요."


"느그 엄마 아빠가 니 외국에 보내 놓고 얼마나-"


귀에 또 피고름이 차는지 고모의 말이 잘 안 들린다.



사실 농갓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사일이라면 진절머리 나게 해 본 고모는 내 사소한 몸짓 사이사이에 묻어있는 고생들을 읽었겠지.


갈수록 오빠를 닮아가는 조카의 미래가 걱정됐을까.




수퍼히어로는 사실.


조카들에게도, 누나에게는 더더욱 말 못 했지만 통나무를 들고 옮기던 히어로는 사실 작업이 있는 날 아침마다 소염제를 먹어야 한다.



남자애들이 으레 그러듯 어릴 적 빠져있던 공상 속에서 난 항상 총알을 튕겨내고 하늘을 날았었는데 90kg에 육박하는 내 몸뚱이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평소보다 기계 연장들을 오래 쓰고 나면 따뜻한 물을 틀고 굳어버린 손가락 관절들을 혼자 풀고 있는 이튿날을 맞이해야 하며 태풍에 쓰러진 박달나무를 휙 던져버리지 못해 30kg 단위로 쪼개야 하는 현실은 참 인간적이다.



예전에 다쳤었던 무릎이 또 욱신거릴 때면 일전에 친구가 내게 했던 경고처럼 언젠간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혼자 불안해하곤 한다.


숲은 아주 크고 휑한 공간인데 그 안에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밖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공허하고 축축하다.



매일 몸을 쓰다 보면 자신의 몸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알게 된다.




"벽에 멧돼지 머리부터 거는 거죠."


통나무집을 설계하고 연습하기 시작했을 때 내 10년 지기 이대리는 내부 인테리어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직접 잡은 멧돼지 머리를 벽에 걸어두는 게 내 사무실 인테리어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다 죽어."


이 형은 항상 진지해서 좋다.

내가 플랜트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꽃을 키우러 간다고 말했을 때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진심 어린 대답-정신 나갔냐고-들을 해줬었다.


"형, 내가 그런 금수한테 질 거 같아요?"


"멧돼지한테 이겨서 뭐할 건데?"


"지는 거보단 낫잖아."


"아니, 애초에 왜 싸우냐고."


이런 식의 대화를 학창 시절부터 쭉 이어오는 걸 보면 이 형도 내심 좋아하는 것 같다.



"형, 내가 이번에 해봤는데 나 200kg까지 들고 걸을 수 있어."


"아 진짜? 어때?"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 나던데요?"


둘이서 잠시 깔깔거리고 웃는다.


"딱 200kg 정도 되는 멧돼지를 잡은 다음 그걸 짊어지고 마을회관 앞에 따악 내려놓는 거야. 이장님부터 해서 사람들이 몰려오겠죠. 이거 어떻게 잡은 거냐고 막 물어보고."


"야 그땐 얼굴에 피 같은 거 닦지 말고 그대로 가. 리얼하게."


"어떻게 잡았냐? 숲에서 딱 마주쳤는데 개들이 달려드려는 거 내가 막고 멧돼지한테 말했다. '원터치로 하자'. 그러면서 장갑을 멧돼지 얼굴에 탁 던졌다."


"그거 결투신청 같은 거지?"


"그치그치."


어느새 살도 보태가며 신나게 얘기하다 해가 내려앉기 시작하자 이대리와 나는 연장을 챙겨 내려왔다.



"내일도 출근해요?"


"당연히 해야지."


"그냥 형도 내려와."


둘 다 낄낄거리며 웃지만 딱딱한 길을 밟으며 하는 농담이 아까만큼 재밌진 않다.



잠시 동안은 역전의 용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취해있었는데 숲 밖을 빠져나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멧돼지 얼굴에 목장갑 던져가며 결투를 벌일 일도, 2km나 떨어진 마을회관까지 짊어지고 걸어갈 일도 없었다.


무사히 도망이나 잘 치면 다행이겠지.




라만차의 풍차는.


내가 만든 풍차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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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얼기설기 만든 것 같았는데 빙글빙글 잘 돌아가니 신나서 풍차에 달려들기도 하고 날개에 매달려 올라갔다 내려가며 혼자 행복해한다.


알고 보면 풍차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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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건설사 사장님들은 나사 서너 개쯤 빠진 젊은 청춘이 혹시나 탈선할까 봐 어떻게든 틈새를 만들어 거기에 나를 끼워 넣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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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좀 도와달라는 말에 현장에 가보면 꼭 내가 오지 않았어도 됐었다는 사실을 알고선 괜히 미안한 마음에 더 신경 써서 일하게 되는데 능력 이상의 품삯에 굳이 저녁까지 먹여가며 집에 보내주실 때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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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있는 공간에 정원이나 만들고 싶다며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만들어주면 된다는 동네분들이 주시는 선금은 정말 무겁게 느껴진다.



막냇동생의 기행을 구경하며 다른 시차 속에 살고 있는 큰누나는 날 대학교까지 보내줬으면서 대학원에 보내주지 못한 걸 쭉 아쉬워했고-내가 안 간다고 했었고 지금은 나도 후회한다- 이제 그 자리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내가 엎지르는 물들을 조용히 모두어 주고 계신다.


모두 안 보이는 곳에서 미완성의 풍차를 나 모르게 고쳐주고 손으로 돌려주고 계시는 기분이다.



언젠가 정말 완성되고 바람이 불면 모두 쉴 수 있겠지.

로시난테 분장을 하고 있는 내 친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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