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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May 03. 2022

유익한 게임 3개를 추천합니다

시선 3화 [게임] by 색시

주간 <시선> 세 번째 주제는 '게임'입니다.



 내 친구 선장에게 게임 몇 가지를 제안할게.

 이 중 가장 유익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고르고 시작하면 된다.



1. 칭찬게임


겸손의 미덕이 왜곡되어 낮은 자존감에 자기 비하까지 이어지기 십상인 한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낯간지러울 수 있는 게임. 민망함을 이겨내고 박자에 맞추어 자기 칭찬을 한 문장씩 얘기한다. 템포가 엉키거나 더듬거리면 패배. 난이도 하. 쓸데없이 자신을 낮추던 버릇만 잠시 잊으면 된다. 가급적이면 세분화시켜 얘기해야 칭찬할 거리들이 많아진다.


‘성격이 좋다’처럼 모호한 거 말고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배려심이 깊다’라고 한다거나, ‘예쁘게 생겼다’로 끝내기보다 ‘코가 빚어놓은 듯 예쁘다’라고 한다거나. 눈치챘겠지만 네 칭찬이야, 선장아.


그러고 보면 나에 대해 규정짓기 위해선 어째 타인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통해 혹은 타인 투성이 사회 속에서 보고 느낀 바로 비교 분석하여 나는 이런 사람 구나 정의 내리지. 어느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며 지내는가에 따라 많은 생각들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나라는 존재의 당위성을 오로지 내 안에서 찾기란 불가능한 걸까. 아이러니하지 않아? 나는 남으로부터 존재한다.


그래서 위에 얘기한 선장의 칭찬은 받아들일 만하지? 맞는 말이긴 한데.



2. 거꾸로 손병호 게임


손병호 게임의 유래는 술자리에서 “여기에서 ~한 사람 접어”라며 이미지 게임을 리듬감 있게 손가락 접기로 풀어낸 것인데 배우 손병호 씨가 예능에서 자기 이름을 붙여 소개하여 대중들에게 ‘손병호 게임’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원래는 타겟이 되어 과한 관심을 받아 다섯 손가락을 먼저 접게 되는 사람이 패배하는 수동적인 게임이지만.


우리는 이걸 한 층 능동적으로 바꾸어볼 거야.


이름하여 ‘거꾸로’ 손병호 게임. 먼저 다섯 손가락을 전부 접고 빠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러려면 상대가 안 해봤을 법한 자기만의 특성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만 접도록 해야겠지. 그 과정에서 숨겨왔던 나름의 비밀이나 흑역사가 드러나 창피하더라도 게임에선 이겨야 하니 우선 던져놓고 나중에 무마하거나, 나만 잘난 걸 얘기하자니 민망하더라도 역시 이겨야 하니 머쓱해하며 일단 뱉어보는 거지. 둘 다 아닌 얘기라면 내가 관망했던 희귀한 풍경들을 끌어올 수도 있지. 이기기 위해 내 얘기를 해야 하는 자발적 진실게임이라고 볼 수 있어.


이 기회에 지금까지 내 삶에서의 인상 깊던 사건사고들을 반추하다 보면 꽤 밀도 높은 생을 살아왔구나 따위의 생각이 들기도 해. 또 평소엔 별 의미를 두지 않던 부분들이 생각보다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집단의식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괴짜 개인으로 존재할 때에 승리하는 유쾌한 게임이야.


다만 게임의 리듬에 맞춰(다른 게임에 비하면 템포가 한참 느리지만) 지난 30년을 재빨리 훑고 또 그중에서 공개할만한 걸로 엄선해야 하니 골이 조금 아플 수 있어 난이도는 중상. 참고로 세월 더듬으며 스쳐가는 오만가지 감정들을 우선 젖히며 승부를 위해 표정 관리하는 데에 들어가는 전력 소모는 덤.



3. 요즘 유행인 밸런스 게임


나는 4년 전 친한 남동생 두 명과 뉴욕 한 달여행 중 자주 했던 게임인데 요즘 와서 유행하더라. 브루클린 골목을 한참 걷다가 조금 정적이 흐르면 대뜸 묻는 거지, “재입대 vs 월북”


양극단의 A 혹은 B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인데 고르기 어려운 정도가 균형 맞춰져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래. 어려운 정도의 균형이 맞는지 아닌지는 누구 판단일까, 질문자? 예를 들면, “10초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VS 10초 전으로 돌아가는 능력”. 여기에서 하나를 고르는 거야. 가치판단의 잣대가 뚜렷할수록 고민의 시간은 줄어들겠지, 결국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는지 알아보는 게임이니까.


저 질문은, 조금 고민이 되긴 하지만 나라면 전자를 택하겠어. 10초 전으로 돌아간다면 과거의 한순간을 바꿀 수도 있단 얘기인데, 나는 지금까지 흘러온 모든 시간들 중 후회되는 순간이 하나도 없으니. 속상하고 안타까운 순간들은 숱하게 많다만 전부 현재로 향하는 전화위복, 새옹지마를 담고 있는 소중한 플롯이라 생각해. 이 오묘한 희열을 앞으로도 계속 느끼고 싶으므로 순간의 감정으로 과거를 바꾸는 짓은 안 할래. 하지만 그렇다고 10초 후의 미래를 굳이 보고 싶느냐 물으면 그건 또 아냐. 차악으로 전자를 고른 것뿐.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설령 얻게 되더라도 눈만 질끈 감으면 되지 않을까? 나날이 팽창하는 호기심에도 여태껏 사주나 신점 한 번 안 봤던 그 참을성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 하나에만 내가 중시하는 가치들이 세 개나 드러난다. 과거보다 현재, 기권보단 투표, 하기 싫을 때엔 꼼수. 이 게임은 승패가 따로 없다. 원래 답이 아예 없거나 많은 게 가장 어려운 거니까 난이도 상.이라 하자.



어때? 우리 어떤 게임해 볼까 선장아, 참고로 모두 음주 없이 맨 정신에 할 거야.




추천 음반 : Hiromi [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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