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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Feb 28. 2023

싫은 것을 싫어하는 것이 싫지만

시선 16화 [싫어하는 것] by 색시

주간 <시선> 열여섯 번째 주제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싫어 List Up 


1) 무책임 + 무성의 = 민망함

선장, 나는 민망한 걸 상당히 싫어하는데 말이야. 모름지기 무책임한 상태에서 무성의하기까지 할 때가 제일이야. 사실 무책임한 모습만으로도 꽤 민망하지만 거기에 덜 무책임해 보이려는 성의까지 부재중이라면 살짝 역겨워. 나는 인간이 무언가를 책임지려는 모습에 인류애를 느껴서인지 유독 그런 풍경들은 기억 저장고에 종종 담아 두거든. 세월이 흐르고 개인의 역점 이동으로 관심이 덜어질 수는 있으나 책임 없는 언행들을 계속하며 손 털고 싶어 한다면 어우, 내 사지가 꼬여. 내 기억에서 높이 샀던 모습들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며 좀 울적해지기도 해. 적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애초에 무책임한 인간이면 성의도 별로 없겠다 싶네. 성의에 대한 책임 역시 뭣도 없을 것 같은데, 무책임 - 민망함으로 직결해야 하려나?


예시 : 1부 1처 국가에서 온갖 사랑과 결의에 찬 언행으로 결혼을 한 뒤, 배우자 한 명만으론 부족하다며 각고의 노력 없이 각종 의무 불이행과 함께 외도를 꿈꾸고 실행으로 옮기는 모습, 다수의 특성인 냄비근성.



2) 장인 정신의 부재

우리나라의 현시각 트렌드인 것 같기도 해. 끈기와 집요함, 섬세함과 강인한 정신력, 대상에 대한 짙은 애정으로 점철되는 장인 정신은 내다 버린듯한 ‘8282’의 시대. 덕분에 대부분 것들의 질은 떨어지고 그저 돈, 싸구려 감성, 단발성, 무지(無知)가 판을 치지. 허울 좋고 내실 없는 삶. 그 어느 때보다 well-made가 절실해. 그 과정 속의 후끈한 땀 냄새와 눈물 젖은 오뚝이 정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과물이 터뜨려버리는 눈물샘 모두 간절해, 나는. 


예시 : 부실공사,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고장 나 버리는 공산품, 값비싸고 의미 없는 전시들 등등…



3) 반지성주의

나는 해상도 높은 삶을 살고 싶어, 선장. 그래서 언제나 지성인을 꿈꿔. 내가 틀린 걸 짚어주고 모르는 걸 알려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야. 반대로, 틀린 게 개성이고 모르는 게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면 속이 갑갑하다. 창피하면 혼자 창피해하면 되지, 근본 없는 자존심으로 자기보다 랭귀지가 많아 표현력이 뛰어난 상대방을 굳이 공격하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지내는 이들 중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역시 한 명도 못 보았지. 비슷한 이야기로, 사고(思考)의 고인 물 역시 정말 싫어. 무익할뿐더러 감동도 없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 재미가.


예시 : 맞춤법 틀린 걸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아몰랑”, “그래 너 잘났다”



4) 자기 관리의 기나긴 부재

내 인생 하나 잘 살아도 주변에 빛을 비춘다. 반대로, 내 인생 하나 똑바로 못 살면 결국 타인들에게도 폐를 끼치더라. 심신의 안정을 포함한 나 자신에 대한 총체적 관리는 어떻게 뜯어보아도 윈윈을 향한 필수 덕목. 물론 누구든 각자의 사연 탓에 동굴로 들어가게 되는 시기가 있지.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기 관리는 복근 관리, 토익 만점 등의 어느 정도 무서운(?) 걸 말하는 게 아냐, 현주소에서 조금은 ‘아는 만큼 잘’ 살아가려 노력해 보잔 것뿐.



5) 불평불만

대부분의 불평, 불만은 시도조차 안 해본 이들의 특허라는 점이 우스워. 나까지 힘 빠져서 싫어. 여기에 3), 4)가 추가된다면 그야말로 결정체가 되는 거지. 나와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결정체.



6) 불통(不通)

아주 단순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어려운가 봐. 사람들은 생각보다 묻는 말에 대답을 잘 안 해,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약속시간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늦는 이에게 “어디쯤이야?”를 물으면 왜 열 중 아홉은 “가는 중이야”라고 답하는 걸까. 심지어 여기에 자매품인 질문 “몇 분 정도 늦어?”를 물으면 역시 “가는 중이야 미안해”라고 답이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다시금 어디냐 물어보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사람이 늦을 수도 있지, 그런데 어디쯤이고 몇 분 정도 걸리는지를 알아야 내가 기다리는 시간을 더욱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 이 말이야. 많이 늦으면 어디 먼저 돌아다녀 보고 있던가 하게. 


어떤 관례적인 것들에 목을 매는 사회일수록 사람 간의 진정한 소통은 어려워진다고 생각해. 조금은 더 군더더기 없는 대화를 하고 싶어.



7) 위선

위선은 두 종류의 사람들을 싫어지게 만든다. 위선을 부리는(그리고 사실 그 위선이 눈에 보이는) 부류, 그 위선에 의심 한 번 품지 않고 쌍수를 들고 반기는 안타까운 부류. 



8) 기타

몸속의 것을 굳이 보이는 것(입 벌리고 음식 씹기, 혓바닥 내밀기). 식사 때에 쩝쩝거리기. 여행지에서 SNS 업로드용 사진 및 영상 찍고 보정하느라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기회, 동행과 더 많은 대화를 할 기회를 놓치는 것. 본질에서 멀리 달아난 모든 것들. 거짓말. 특히 어색하거나 어떤 피해의식 및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하게 되는 무용한 거짓말. 무논리. 난봉꾼. 중독.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 문장들. 다자(多者) 쇼핑. 파충류. 다리가 아예 없거나 너무 많은 생명체. 발음 뭉개며 말하기. 아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조차 안 하는 모습. 졸렬함. 따분하게 생긴 똑같은 건물들의 나열. 카 푸어(Car Poor). 공산주의. 사회주의. 마녀사냥. 아직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내 모습. 사랑하지 않는 것. 어떻게 하면 더,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는 것…


물론 선장아. 전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전부’가 되면 싫다 이 말이야 하하. 

그러고 보면 때론 이렇게 싫은 게 많고 예민한 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가 어렵기도 하다. 




추천 음반 : Charlie Haden & Hank Jones [Come Sunday]

싫어하는 것들을 떠올리다 마음의 평화를 찾을 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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